즐거운생활
1년간 집 빌려살며 전원생활 준비
부경(扶熲) 김기선
2006. 11. 27. 11:41
시골로 간 사람들 |
1년간 집 빌려살며 전원생활 준비
산야초효소 담그는 풀빛 전원생활 |
![]() 시골에서는 법이나 이해관계보다 사람과의 인연이 중요합니다. 제천 송학면 오미리에 내려와 산야초 효소를 만들고 있는 장세천, 노순경씨 부부는 전원생활을 준비하며 맺은 인연들이 시골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초록 물빛이 아름다운 오미저수지가 펼쳐진 제천시 송학면 오미리. 서울에서 살다온 장세천, 노순경씨 부부와 세 아이들이 자리잡은 곳입니다. 산야초 효소를 만들며 시골에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젊은 부부의 전원생활은 풀빛입니다. 시골생활 요령 없어 처음엔 실패 “시골로 온 이유요? 누구나 비슷하지 않을까요. 도시에서 십몇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에, 지루하고 재미도 없었어요.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도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뭔가 나에게 맞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귀농을 해서 시골에서 살아보자, 이런 결심을 하게 됐어요.” 시골에서 살게 된 계기를 묻자 장세천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서울의 통신회사에 근무하던 그는 도시생활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서 전원생활을 꿈꿔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5년 전 꿈을 실현하기로 마음먹고 덜컥 사표를 낸 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 쉽지가 않더라구요.” 하며 그때를 회상하는 장세천씨. 지금이야 뭘 하려면 어딜 가야 하고, 시골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서는 어떤지 대충 알지만, 그때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막막했더라는 것입니다. 퇴직금을 가지고 땅과 집에만 투자하려니, 앞으로 생활비며 노후준비가 막막하고, 또 땅을 사려고 해도 어디가 괜찮은지, 가격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유기농업을 배우고 싶어 농장에 찾아갔다가 두렵고 쑥쓰러워서 말도 못 붙이고 돌아나온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꿈은 갖고 있었는데, 방법을 몰랐던 거예요. 너무 앞뒤를 재다보니 일을 못 저지르겠더라구요.” 부인 노순경씨가 말합니다. 그렇게 어영부영하다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보니 차라리 회사를 다니는 게 낫지 시골에 정착한다는 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싶어 장세천씨는 다시 서울에 있는 회사에 재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년 반 정도가 지나니 또 같은 회의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골에 살면서 차근차근 준비하기로 생각하고, 다시 시골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시골 집 빌리는 데는 전세보다는 월세 2003년 경 장세천씨 가족은 여행을 다니다 눈여겨보았던 영월군 운학리에 내려왔습니다. 집도 없이 빈땅에 가족끼리 내려오자니 우선 지낼 곳이 필요했기에, 전세로 집을 구해 살자고 결정했습니다. 시골에서 집을 구하기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지만 부동산을 통해 어렵사리 하나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은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계약하기로 해놓고, 계약금 내려고 하는 와중에 동네사람과 우연히 말을 나누게 되었는데,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집 잘못 얻었구만.” 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은 저당 잡힌 것도 많고 평판도 좋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계약을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당장 갈 곳이 없게 생겼는데, 마땅한 방법이 있어야죠. 가슴이 답답해서 아이스크림이나 먹을까 하고 동네 구멍가게에 들어갔는데요. 주인 할머니께 ‘집 구하기 참 힘드네요. 여기 어디 빌릴 집 없나요?’ 하고 지나가는 말로 물었더니, 대번 저쪽에 사는 할머니 한분이 세들어 살 사람 구하더라며 소개시켜주신 거예요.” 부동산이며 인터넷을 그렇게 뒤져도 찾지 못했던 것이 동네사람을 통하니 신기할 정도로 잘 풀려나갔습니다. 시골에서는 모든 일이 사람으로 통하고 사람으로 끝난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시골에서 집을 빌린다면 ‘전세보다는 월세’ 라며 입을 모읍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빼줄 여유가 없어 다른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 있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도시에서처럼 금방 집이 빠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1년이고 2년이고 나가지 못하게 되거나 당장 전세금을 받을 것은 포기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이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시골의 월세는 비싸지 않아 부담이 적을 뿐더러, 원하면 언제든지 나올 수 있어 편리합니다. 산야초 효소 만들어 판매 예정 시골에 내려온 뒤 뭘 해서 먹고 살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산양을 기른다거나 버섯을 재배한다거나 된장을 만든다거나, 여러가지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던 중 귀농하여 산야초 효소를 만드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서 산야초 채취에서부터 담그는 법 등 산야초 효소 만드는 법을 전수받을 수 있었습니다. “산야초 효소는 어떤 병을 직접 치료해주는 약은 아니지만, 토양이 좋으면 작물이 잘 자라는 것처럼 우리 몸을 가꿔주는 기능을 합니다.” 직접 먹어봤더니, 소화가 안 되거나 술을 먹고 난 뒤에 마시면 속이 개운해지더라며 장세천씨가 말합니다. 제철 과일이라고 해서 철에 맞는 과일이 몸에 좋듯이, 산야초도 재철이 있어 특히 식물이 자라면서 영양소를 축적하는 봄에 채취하면 좋습니다. 산에 올라가 당귀, 다래, 더덕 등 산야초와 나무줄기를 채취한 다음 그것들을 설탕에 버무려 독에 켜켜히 쌓고 숙성시킵니다. 설탕의 작용으로 발효가 되는데, 나중에는 즙만 걸러 따로 담고 이렇게 2년 이상 숙성시키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햇빛을 막기 위해 직접 만든 저장고에 단지 20여개의 산야초 효소를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는 부부는 제대로 된 효소가 되려면 아직 1년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며 그때를 위해 여러가지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맥이 시골살이 성공의 밑거름 운학리에 집을 빌려 살면서 본격적인 시골생활 준비를 시작한 장세천씨 부부는 작년 3월 운학리에서 30여분 떨어진 제천 송학면 오미리에 땅을 사고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내려왔을 때 막막했던 것과는 반대로, 1년 정도 시골에서 살고나니 근방 토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고, 아는 사람도 많아져 땅 구하기가 수월했습니다. “아는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쫙 뿌려놨어요. 땅을 사려고 하는데 어디 좋은 땅 없는가 하고요. 그랬더니 이곳 땅이 매물로 나오자마자 1주일도 안돼 연락이 오더군요. 그리고 큰 애가 다니는 초등학교 학부형 중에 이 근방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땅을 사려고 하는데 어떻겠는가 여쭤봤죠. 그랬더니 거기 집을 지려면 지대를 높이는 것이 좋은데, 어디어디에 흙이 있으니까 그것을 파서 쓰면 된다는 등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시골에서는 인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됐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있으니 학교에서의 인연을 통해 학부형들끼리 친해지기도 쉽고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있다고 노순경씨는 말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승현이와 3학년인 승주, 5살 막내 대한이 세 아이들 역시 시골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어 대견합니다. 내성적이고 말이 없던 둘째아이는 시골에 온 후로는 활달해지고 사교성도 늘었습니다. 학교에서 칭찬받고 인정받을 기회가 많으니 자신감도 생기고, 학생 수가 적어서 선생님들이 학생 한명 한명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방과후 학교에서는 드럼과 기타를 배우면서 밴드활동도 하고 연주회도 엽니다. 보행기를 타고 다니던 시절 시골에 내려온 막내 대한이는 장세한씨의 말을 빌리자면 ‘차돌’ 같습니다. 서울에 있을 땐 유모차가 아니면 밖에 나가지 않으려던 아이가 시골에 온 뒤로는 혼자서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장난감이 없어도 흙이나 돌멩이로 잘 놉니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라도 좀 더 일찍 내려오고 싶었다는 장세천, 노순경씨 부부는 우리가족은 시골생활이 체질에 맞는 것 같다며 웃습니다. “아이들도 그렇고 저희도 그렇고, 도시보다 시골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요즘 같은 가을철엔 산으로 산초와 도토리 주우러 다니다보면 하루가 다 가고요. 고구마도 캐고 닭 모이도 주고 가끔 나무로 가구도 만들고, 몸은 바쁘지만 마음은 얼마나 편하고 여유로운지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