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경(扶熲) 김기선
2007. 1. 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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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사찰은 큰 산, 깊은 곳에 위치하고 골짜기엔 차갑고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따라서 누구라도 발을 벗고 개울을 건너야만 사찰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이것은 세속 세상의 번뇌를 깨끗이 씻고 부처님을 만나러 간다는 의미가 있다. 사찰에서 개울가에 다리를 놓는 일은 "누구나 쉽게 개울을 건너 부처님을 뵈러 갈 수 있게 한다"는 뜻에서 "월천공덕"이라 하여 소중한 일을 한 것으로 꼽았는데, 사찰에 따라 소나무 가지를 엮어 잔다리를 놓기도 했고, 긴 돌을 건너질러 농다리를 만들어 놓기도 했으며, 자잘한 돌을 알맞게 맞추어 쌓은 무지개다리를 놓은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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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예로부터 중요한 사찰에는 보호를 위한 성을 쌓고 문을 낸 후 그 문을 산문이라 하였다. 금산사에는 견훤을 가두기위하여 아들 신검이 금산사 둘레에 성벽을 쌓고, 문을 낸 바가 있으며, 백제 도성 소부리에 위치한 왕흥사의 성벽은 의자왕이 피신한 후에 나당 연합군과 항쟁하던 스님들의 흔적이다. 이 제도는 조선조에도 계속되어 세조가 낙산사에 시주한 뒤에 성벽을 쌓아 문을 내고, 이 문을 산문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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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일주문은 절에 들어오는 첫번째 표문으로 절의 경내가 시작됨을 알리는 표시이다. "일주"란 기둥 두 개를 한 줄로 세워 만든다는 뜻을 가졌으나, 특수한 경우에 넷을 일직선상에 두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질박하고 투박한 모습의 아름드리 나무로 기둥을 만들어 주변 경관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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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
사천왕은 법을 호지하고 도량을 수호한다. 삼국시대나 신라통일기의 절터에는 일주문, 대문에 해당하는 금강문이 있고 그 안쪽으로 중문이 자리잡고 있다. 산사에 들어서다 보면, 금강문이 없는 절에서는 일주문을 지나 바로 사천왕문에 도달하기도 해서 사천왕문이 대문인 듯 보이기도 하지만, 격으로 보아서 사천왕문은 중문에 해당한다. 사천왕문에는 법을 호지하고 도량을 수호하는 광목천왕, 지국천왕, 증장천왕, 다문천왕 등 네 사천왕상이 좌우에 벌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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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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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 지주
절로 가는 길목에는 이제 곧 부처의 세계로 진입하게 됨을 알리는 당간지주가 우뚝 서 있다. 그것은 깃발을 거는 막대기와 받치기 위한 돌기둥으로, 찰간지주(刹竿支柱)라고도 한다. 깃발을 거는 막대기라는 의미의 당간과 이 당간을 세우는 기둥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형태는 두 기둥을 60∼100cm의 간격으로 양쪽에 세운 것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면이 편평하고 수직인데 반하여 뒷면은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고 둥글며 옆에는 당간을 받치기 위해서 2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그 아랫부분에는 당간을 세우는 간대(竿臺)나 기단이 마련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당간은 석재 또는 철제로 만든 것이나 대개 목재를 많이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재료상의 이유로 부석사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숙수사지 당간지주, 미륵사지 당간지주, 금산사 당간지주, 중초사지 당간지주(827년) 등 주로 당간을 세웠던 통일신라시대의 석재 지주만 남아 있지만 드물게 갑사(甲寺)와 용두사지(龍頭寺址)에 철제로 된 고려시대의 당간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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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사찰에 세워기 시작한 초기 탑의 형태는 목조로 나타났는데, 목조탑은 중국식의 다층 누각형으로 다락집 형이어야 구조가 가능하였다. 삼국시대 말엽이 되면서 목탑과 함께 주로 화강암으로 다듬어 공든 탑이 나타났는데, 전위적이고 담대한, 진취적인 건축가들에 의하여 시도되었다. 석탑의 형태는 목탑의 세부 구조를 과감하게 생략하는 추상성향을 보이나, 다층의 개념은 목탑의 모습을 고수하여 친숙함을 연장시켰다. 시기와 지역에 따라 흙을 빚어 쌓은 블럭형태의 탑, 또,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형태도 발견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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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법당(法堂)은 불교신앙의 대상이 되는 불상을 모신 전각(殿閣)으로, 절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절 안에는 대웅전, 극락전, 명부전, 산신각 등 여러 전각들이 있는데 그 명칭들은 안에 모셔진 본존불의 성격에 따라 정해지게 된다. 즉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봉안하여 각각의 부처님의 세계를 축소하여 표현한 장소이다. 이곳에는 부처의 가르침과 불국정토임을 상징하는 여러 조형물로 장식되어 있다. 그 내부에는 예배의 중심이 되는 본존불과 양옆에서 본존을 보좌하는 협시보살이 불단(佛壇) 위에 모셔져 있고 그 뒤와 좌우에는 불화가 걸려 있다. 위쪽에는 천개(天蓋)가 있어 장엄함을 더하고 있다. 대들보와 천정에는 하늘을 날으는 용과 극락조 (極樂鳥), 아름다운 연꽃과 길상(吉祥)을 상징하는 많은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불단 위에는 부처님을 공양하기 위한 향로와, 화병, 촛대가 놓여 있다. 이외에도 음식이나 물, 차를 담는 발우(鉢盂), 정병(淨甁), 다기(茶器) 등이 배치되기도 한다. .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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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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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구륭천정 |
108개의 돌로 구성된 구륭천정은 고대의 천문관 내지는 불교의 우주관을 상징한다. 천정의 맨 꼭대기에는 연화무늬의 둥근 돌을 덮어 석굴을 완성시키는 동시에 본존불의 천개로 삼았다. 이 두가지는 석굴암의 건축적 특색과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다.

불국사 대웅전, 자하문 |
오른쪽의 팔작지붕 건물은 대웅전. 그 앞에 보이는 규모가 조금 작은 팔작지붕은 자하문이다. 자하문과 대웅전 사이의 마당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서 있고, 대웅전 좌우에는 익랑이 연결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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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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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석가탑

다보탑

무량수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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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사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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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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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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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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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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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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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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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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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체(통도사) |
일반형 석탑과 같이 기단부 위에 탑신과 상륜부를 구성한 형식이지만 평면은 전체가 8각형을 이루고 있어 특이한 양식을 보인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 국보 제 48호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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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사지 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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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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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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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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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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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무다리 |
탑신 괴임의 모각 수법이나 탑신 괴임 및 낙수면 전각의 치석 형식에서 통일신라 성기의 전형으로부터 변화되어 간략화 혹은 부분적으로 생략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하층 기단 면석의 탱주가 1주로 변한 것은 특징적이다. 전라북도 남원군 산내면 입석리 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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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다리 |
신라 말기로 들어서면 석탑 자체의 규모가 작아질 뿐 아니라 각부 양식에서 큰 변화를 일으킨다. 곧 기단부에 있어서 석재가 줄어들고, 면석의 탱주도 간략화되며 탑신부에서 옥개석 받침의 층수가 줄고 있다. 보물 제 37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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