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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주(斷酒) 100일째...그 놈의 술 권하는 사회
부경(扶熲) 김기선
2007. 10. 29. 15:53
단주(斷酒) 100일째...그 놈의 술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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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사람들이 왜 저랫을 까라는 의문속에서 지난 7월 23일 '술을 끊겠습니다!'라고 선언하고 단주(斷酒)를 시작했습니다. 어언 100일이 지났습니다. 실은 그 사이 술을 마시지 않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언제 100일이 지났는지도 잘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간 술먹는 회식자리에도 참석했고, 막걸리 한사발이 그리운 등산도 했고, 소주가 없으면 괴로운 바닷가 횟집에도 갔고,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회포도 풀었습니다. 특히 술 빼면 시체라는 언론사 기자들과도 자리를 같이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큰 부담이나 어색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우리 사회는 술에 관한 한 비주류로 살아 간다는 일은 힘든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특히 공무원을 상대로 하는 직무를 하는 경우에는 술을 마셔야 관계가 트이고 부드러워 집니다. 많은 분들이 '왜 끊었냐?'고 궁금해하고 '언제까지 마시지 않을거냐?'고 묻습니다. 단주를 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저는 술, 담배를 중학교 2학년때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담배는 25살때인가 자연히 싫어져서 조금씩 피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술은 그 때부터 주욱 마셔대었는데 시골 골방에서 몰래 배운 술이라서 늘 많이 마시고 끝까지 마시는 버릇이 몸에 깊이 배었습니다. 이제 나이도 좀 들고 하니 몸이 견디지 못하게 된거지요. 그래서 이 때 절제를 하지 않으면 병나고 힘들어 진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절제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늙어서 '애주(愛酒)를 못한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1년만 끊고 절제하는 습관이 완전히 몸에 배도록 하자! 1년이라는 기간은 그냥 1년이 아니라 내 스스로 술을 절제할 수 있을 수 있는 기간입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확실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습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슬 마시지 않게 디니까 '술맛'을 알게 되더군요. 그냥 부어라 마셔라 할 때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습관적으로 그냥 마시는 행위였을 뿐이였는데... 싱싱한 횟집에서 마시는 소주 한두잔, 골프라운딩중에 그늘집의 생맥주 300cc, 산꼭대기에서 마시는 막걸리 한사발,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와 나누는 한두잔은 그야말로 인생의 윤활유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단주 기간중에 오래전 본 적이 있는 '술 권하는 사회'라는 단편소설이 떠올랐습니다. 1921년 <개벽>에 발표된 작품으로 일제 강점하에 지식인의 절망과 고뇌를 그린 현진건의 단편소설입니다. 소설속 인물인 남편은 중학을 마치고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지만 돈을 벌기는커녕 메일 술을 마시며 귀가하는 등 생활이 문란했습니다.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는 술 권하는 사람들을 탓하는데, 남편은 술을 권하는 것은 다름 아닌 조선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쓴웃음을 짓습니다. "술 아니 먹는다고 흉장이 막혀요?"라고 묻는 아내를 밀치고 남편은 대문을 열고 나가버립니다. 아내는 해쓱한 얼굴로 경련적으로 떨며 절망한 어조로 소근거립니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술은 사회가 권하고, 취하는 건 엄한 놈들이 취했다나요. 그 때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사회는 분명 '술권하는 사회'입니다. 최근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불안한 사회속에서 일체감을 가져야하고, 한 통속이 되어야 마음이 놓이는 집단심리학의 발로가 아닐까요? 폭탄주는 의외로 무리들속에 끼였다는, 제조상감이나 제조상궁과 맺어졌다는, 그런 안도감 같은 것이 배어 나지요. 좀 지난 얘기지만, 괴산군은 술을 많이 마신 공무원 3명을 뽑아 '음주문화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지역경제를 살릴 방법이 고작 공무원에게 술 권하는 것이었을까라고 생각이들지만 고육지책중 하나였게지요. 삼국지에서 방통은 유비가 작은 고을을 다스리게 하자 매일 술만 마시고 일은 하지 않으면서 "나는 백리지재(百里之才.백리 정도의 작은 마을을 다스릴 인재)가 아니다"고 했다고 합니다. 지난날 상을 줄 공무원은 통 크되 술취한 방통이였을겁니다. 그러나 오늘날 상줄 인물은 열(熱)과 성(誠)을 다하는 성실한 십리지재가 아닐까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 폭탄주 자리는 고역중에 고역입니다. 같이 하자니 고역이요, 사라지자니 역적이니... 그런 자리를 위해서 분위기를 망치지 않게 하기 위해 제가 어거지로 만들어 낸 폭탄주제조법을 하나 소개합니다. 부득이 마시게 해야 한다면 이거 한잔으로 끝나게 해야 합니다. 정말 부득이한 경우를 위한 '어먹잔(어쩔수 없이 먹는 잔)'입니다. 폭탄주 기계와 폭약(맥주), 기폭제(양주)를 아시지요? 우선 기폭제(양주)에 양주를 반잔만 채웁니다. 그리고 그 잔을 폭약(맥주)잔에 넣습니다. 그리고는 기폭제로는 맥주대신 맹물(생수)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마시는 게 단주자를 위한 부득이한 배려주입니다. 술 권하는 사회, 문제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죄일 수는 없구요. 의지박약한 자신의 도피, 자기 합리화일수는 더욱 없습니다. 극복해 나가야합니다. 제 주위에서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너무나 처절히(?) 마셔왔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분들이 "그래 이제 그만마셔야할 때가 되었어!"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 일처럼 반가워 했습니다. 100일! 그 숫자만이 아니라 마음속 찌꺼기들을 말끔히 버리겠습니다. 아직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100일가지고는 어림없다는 걸 저도 압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하겠습니다. 도와주신 많은 '당국자'들에게 감사, 감사드립니다. 당국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흐리멍텅한 초췌한 모습을 버리겠습니다. 이제 자신감을 절대 잃지 않고 단주해 나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