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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記錄)에 대한 단상(斷想)

부경(扶熲) 김기선 2006. 1. 21. 16:54
다산 정약용선생께서 남긴 말씀중에 새겨둔 말이 있습니다.

    동트기전에 일어나라!
    기록하기를 즐겨하라!
    차(茶)를 즐겨 마셔라!

품질관리가 일본에서는 대성공을 거두어 제조강국으로의 기틀이 되고 우리나라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중 하나가 바로 기록문화가 널리 뿌리 내리지 못하였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기록을 하더라도 건성건성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컴퓨터가 생기고 나니 저장문화가 성행하여 더 기록을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기록하기를 즐겨하라!"라는 다산 선생님의 가르침을 보다 더 성실히 수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황우석교수 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황우석연구실의 연구노트를 확인하면 바로 답이 나올 수 있을 걸로 생각하였습니다.
연구하는 연구원들은 누구나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과정과 결과와 데이터를 빠짐없이 기록하는 '연구노트'를 쓰거든요.
연구성과에 대한 특허논쟁이 벌어질 때도 연구노트로 자신의 기술임을 입증하고 법정이나 특허심판정에서도 이 '연구노트'의 기록을 가장 중요시하게 됩니다.
특히 이공계 실험실, 특히 생명과학 분야 실험실은 각 실험 단계마다 상세한 상황을 기술하고 사진 등으로 자료를 남겨 두는 것이 철칙으로 돼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적 기술을 연구하는 연구팀에게 있어 '연구노트'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줄기세포 논문 조작에 대한 서울대 조사위원회 검증에 이어 황우석 교수팀 연구원들에 대한 검찰 소환이 시작되면서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황 교수 연구실의 실상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선 연구성과의 진위여부와 논문조작여부에 대해서는 검찰이 착수했으니 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이고, 연구팀의 구성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동물복제분야에 치중되었다는 건 제가 판단할 영역이 아니므로 차치해 둡니다.

그러나 조사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에 의하면 연구실의 실험 기록 관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하게 기록 보관되어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황 교수팀의 실험 노트를 살펴보면 연구원들이 휘갈겨 쓴 메모 수준이어서 도저히 이것만으로는 어떤 실험이 이뤄졌는지 성과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알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한 조사위원은 "도저히 제대로 된 실험실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지 않습니까.

연구라는 게 결과물만 멋있게 나가면 된다는 생각에 치우친다거나 변조를 해도 그럭저럭 넘어간다고 하는 풍토가 있는 연구실험실은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게 모든 연구원들의 기본정신이죠.

"기록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조금 다른 얘기입니다만, 이 말은 전국의 역사학자 399명이 철저한 국정 기록과 적극적인 정보공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기록관리 및 정보공개 제도 개혁을 정부에 촉구할 당시 회견 준비과정에서 실무를 맡았던 오항녕 고려대 연구교수가 한 말입니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모든 국정행위를 기록으로 남기고, 이를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할 책임을 갖는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과거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는 당대의 실정이나 폐해를 감추려는 목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관리와 공개를 하지 않는 나쁜 폐습이 이어져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예를 들어 보면, 지난 97년 씨랜드 화재참사 당시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결재기록만 있을 뿐 인허가 과정에 대한 기록은 전무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것처럼 당시 담당자는 허가에 반대했지만 외압 때문에 결제라인에 따라 허가를 내줬다는 기록이 발견되었습니다.
공문서에는 없던 기록이 담당자의 업무노트에서 밝혀졌던 셈입니다.
이 기록에 의해 당해 공무원들을 일부 홀가분하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선생께서는 "기록하기를 즐겨하라!"고 하셨습니다만, 이는 즐기는 수준을 요구하셨다기 보다는 모든 기록이 생활화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셨다고 보아야 옳을 겁니다.

중요한 일이고 바른 일일수록 기록해야 합니다.
시시비비가 개입될 여지가 있는 일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다산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새겨 봅니다.

    동트기전에 일어나라!
    기록하기를 즐겨하라!
    차(茶)를 즐겨 마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