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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경영 혁신, 기술로드맵을 활용하라

부경(扶熲) 김기선 2006. 5. 29. 12:56

R&D 경영 혁신, 기술로드맵을 활용하라


 
R&D 활동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기술로드맵 수립이 R&D 경영 혁신의 관건으로 부각되고 있다. 국내 기업의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의 문제점과 혁신 방안을 알아보고, 그 파급효과를 분석한다.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하는데 있어 R&D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최근의 경영 환경 변화는 점점 더 R&D의 중요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과거 생산성 중심의 경쟁 원칙이 창의성 중심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빠른 기술 진화와 글로벌 경쟁 격화에 따라 치열해진 신제품 출시 경쟁도 R&D의 중요성을 증대시키는 요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우 R&D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자, 반도체 등 R&D 비중이 큰 IT 산업이 국내의 핵심 산업이기 때문이다(<표1> 참조). 또한 IT 산업내 많은 분야에서 확고한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최근 IT 업계 전반의 저수익성 추세와 기존 사업의 범용화, 성숙화에 대한 돌파구로 신기술/신제품 개발이 절실한 시기에 맞닥뜨렸다.
 
국내 R&D 경영 문제점 많아
 
이처럼 R&D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최근의 산업 환경을 반영하듯 우리나라의 R&D 투자는 2000년 이후 연평균 10%대의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외형적 투자 규모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R&D 경영 상황은, 최근 R&D 경영의 주요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시장 중심의 R&D, ▼효율성 높은 R&D 투자, ▼다양한 소싱 방법을 활용한 R&D 등과는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 
 
첫째, 시장의 니즈에 기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R&D 투자가 사업화로 연결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산업자원부 등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R&D 사업화 성공률은 20~30%로, 미국 등 R&D 선진국의 30~50% 사업화 성공률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둘째, R&D 투자 효율성도 선진국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2.85%로 선진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기여도는 10% 정도에 그쳐 미국의 40%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셋째, 기술 확보를 위한 R&D 소싱 방법에서도 최근의 트렌드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전통적인 R&D 개념을 뛰어넘는 다양한 R&D 소싱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기술자산을 가진 기업의 인수를 통해 신기술을 확보하는 A&D(Acquisition & Development), 대학, 연구소, 벤처기업은 물론 경쟁기업과도 네트워크를 형성해 신기술을 개발하는 C&D(Connect & Development) 등이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경우 아직까지 자사 역량내에서만 R&D에 임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의 혁신 필요해
 
그러면 이러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안고 있는 R&D 경영의 문제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리더십 부재, 미숙한 R&D 운영 프로세스, 비효율적 조직 구조 등 여러 가지 요인을 들 수 있지만 체계적인 R&D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로드맵의 문제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판단된다. 이는 경영 환경 변화 속에 R&D의 전략 방향도 시장대응형 전략에서 시장개척형 전략으로 바뀌고 있고, 이에 따라 R&D 전략의 성공 요소로 경영 자원, 조직 역량보다는 비전, 전략적 의지 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국내 기업의 기술로드맵 문제가 R&D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먼저 국내 기업의 경우 고객의 니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R&D 부서 단독으로 기술로드맵을 수립하는 경우가 많아 시장의 니즈를 제대로 반영한 R&D 활동이 힘들다. 또한 국내 기업의 기술로드맵은 향후 2~3년 정도의 단기간 예측에 그칠 뿐만 아니라 주기적인 업데이트도 이뤄지지 않고 단발성 작업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일관성있는 R&D 수행을 기대하기 힘들고, 그에 따라 R&D 투자 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내 기업은 A&D, C&D 등 광범위한 R&D 소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으로 기술로드맵은 자사의 보유 기술을 바탕으로 한 예측 가능한 기술 중심으로 수립되고 있다. 그러므로 기술로드맵 문제가 R&D 경영의 3가지 트렌드와의 괴리를 야기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기술로드맵 수립의 혁신이 이루어진다면 위에서 언급한 R&D 경영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은 어떻게 혁신되어야 하나? 기술로드맵 수립의 혁신을 위해서는 <표 2>에서 제시한 것과 같이 시장/고객의 니즈 반영, 전사적 협업체제 구축, 장기적 계획 수립 및 계속적인 업데이트 등이 실현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은 크게 ▼타겟 시장 설정, ▼타겟 시장 공략을 위한 제품 선정, ▼제품 구현을 위해 필요한 기술 결정 등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수행되어야 한다(<그림 1> 참조). 
  
기술로드맵은 시장/고객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
 
기술로드맵 수립의 첫단계는 시간 흐름에 따른 타겟 시장을 결정하는 것이다. 시장 조사를 통해 향후 5~10년간에 걸친 장기적인 고객 니즈의 변화를 예측하고, 이를 고려해 타겟 시장을 정해야 한다. 타겟 시장 결정을 위해서는 사내의 목표와 비전 등 방향성 결정이 선행되어야 할 뿐 아니라, 예상 경쟁업체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R&D 부서 단독 작업은 불가능하고, 영업, 마케팅, 전략 기획 부서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결국 기술로드맵 작성 과정은 회사의 목표 및 비전 등 지향점을 공유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또한 기술로드맵은 기술개발의 투자 우선순위 결정 등 단순한 R&D 차원을 넘는 경영 전략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다음으로 타겟 시장을 만족시킬 제품을 선정한다. 타겟 시장을 적절히 공략할 수 있는 차별화된 제품을 도출하고, 그 제품의 특성 및 스펙을 결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품 개발을 위해 필요한 기술들을 정리한다. 이러한 기술들은 자사 자원 내에서 확보 가능한 기술의 범위를 넘어서는 포괄적인 기술로드맵이어야 한다. 이러한 기술로드맵 작성 후에는 연 1, 2 회 정도의 주기적인 업데이트가 필수적이다. 기술로드맵에는 필요한 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도 포함될 수 있다. 기술로드맵을 통해 자사의 자원을 바탕으로 확보 가능한 기술과 그렇지 못한 기술을 구분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소싱 방안 수립이 뒤따라야 한다. 
 
기술로드맵 수립의 혁신을 통해 R&D 트렌드에 부합
 
이러한 기술로드맵 수립의 혁신은 해당 기업의 R&D 활동을 위에서 언급한 R&D의 3가지 트렌드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R&D 경영의 혁신으로 이어지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즉 혁신적 기술로드맵 수립을 통한 기술개발은 타겟 시장을 위한 제품 기반 하에 도출된 것이기 때문에 시장 중심의 R&D가 될 것이고, 시장에 대한 빠른 대응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중장기 기술로드맵을 통해 일관되고 체계적인 R&D 관리가 가능해져 효율 높은 R&D 수행이 가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품 구현을 위해 필요한 기술과 현재의 보유 기술과의 격차를 사전에 인식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필요 기술에 대한 소싱 방안에 대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 운영 효율성 제고 가능
 
그런데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의 혁신은 국내 기업에게 위에서 언급한 R&D 경영 혁신 이상의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은 비즈니스 프로세스 전반의 효율성을 제고시킬 것이다. 국내 기업의 경우 장기적인 기술로드맵의 부재 속에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즉흥적 대응에 급급한 경우가 많아 제조 및 기술개발 등에서 비효율적인 운영이 많았다. 하지만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의 혁신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전략의 체계화와 일관성 있는 운영을 가능하게 해 경영 전반의 효율성을 개선시킬 것이다. 
 
모토롤라는 기술로드맵 수립을 통해 경영효율성 향상을 달성한 좋은 사례이다. 원가 절감 방안을 찾던 모토롤라 구매담당 책임자는 부품 표준화 전략을 통해 이를 달성하고자 했다. 그래서 주먹구구식 제품 개발이 아닌 기술로드맵을 활용한 장기적이고 체계적 제품 기획을 통해 복잡한 휴대폰의 포트폴리오를 단순화시켰다. 결국 일관성 있는 제품 라인업 구성을 통해 배터리, 메모리, 디스플레이 등 휴대폰 주요 부품의 표준화를 꾀할 수 있었고, 이는 결국 부품의 대량 구매로 이어져 원가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통일성 있는 디자인 컨셉도 적용할 수 있었다.
 
또, 종합 전자회사인 필립스도 기술로드맵을 활용하여 계열사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했다. 필립스의 경우 세트업체는 물론 부품업체도 가지고 있어 수직계열화된 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업구조에서는 계열사간의 효과적인 협업이 필수적인데, 필립스는 계열사간 기술로드맵의 공유를 이들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했다. 기술로드맵 공유를 위해서는 계열사간의 원활한 정보 공유가 필요했고, 이러한 과정을 상호 협업의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가령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의 시장 분석 단계에서 세트업체는 제품사용자들의 니즈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를 부품업체와 공유해 통일된 기술로드맵을 수립했고, 이를 통해 부품업체는 세트업체가 원하는 부품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었다.
 
Innovator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 제공
 
둘째, 국내 기업에게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에서 선도자(Innovator)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 동안 국내 기업들의 주요 전략은 혁신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Innovator 전략보다는 Fast Follower 전략을 기반으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와 같이 시장의 불확실성이 크고, 시장의 니즈가 불분명 했을 때에는 Fast Follower 전략이 안정적인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많은 산업에서 성숙도가 심화되어 혁신적 신제품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Fast Follower 전략만으로는 수익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은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기 때문에 제품의 적기출시(Time-to-Market)를 실현하여 선도자로서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국가적 기술로드맵을 통해 탄생된 와이브로가 그 좋은 사례이다. 와이브로는 초고속인터넷의 유비쿼터스화에 대한 니즈 충족이라는 개념으로 개발됐고, 이를 통해 관련 기업들은 통신장비 수출 및 이동통신기술 특허 확보 등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국내 와이브로 관련 기업들은 선도적 기술 개발을 통해 2008년 이후 본격 형성될 것으로 보이는 세계 휴대인터넷 시장에서 경쟁업체보다 빠른 대응을 통해 선도자로서 이익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로드맵 작성에 선도적인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모토롤라는 기술로드맵을 신기술 개발 기회로 활용하는 좋은 사례이다. 30년 전부터 당시 CEO인 Bob Galvin의 지시로 연 2회 모든 부서장들이 참석하여 모든 주요사업에 대한 기술로드맵을 검토하고 있다. 여기서 새롭게 출현할 기술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새워 선도적 기술 개발 기회를 찾는데 활용할 뿐 아니라 현재의 기술능력을 경쟁사와 비교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신성장 동력 발굴 기회로 활용 가능 
 
셋째,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은 신성장 동력을 찾기에 분주한 국내 기업에게 신규 사업 진출의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객의 니즈를 모니터링할 수 있고 필요한 기술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할 경우 신규 사업 발굴의 기회가 될 것이다. IMF 체제 이후 수년 간 많은 국내 기업들이 선택과 집중이라는 틀 안에서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기업 운영을 해 왔다면, 최근 대부분의 산업들이 성숙화되고 레드오션으로 변모해 가면서 많은 기업들이 신성장 동력 찾기에 분주하다. 이러한 국내 기업들에게 기술로드맵 수립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우편서비스 업체인 로얄메일(Royal Mail)은 기술로드맵 수립을 활용하여 신규 사업에 진출한 좋은 사례로 파악된다. 로얄메일은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을 통해 필요 기술을 확보하여 전통적인 우편업무에서 인접 사업 영역으로 새롭게 진출할 수 있었다. 350년 동안 전통적인 우편업무를 주요 사업으로 한 로얄메일은 1999년 보안 기능을 강화한 기업용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는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을 통해 인터넷을 이용한 기존의 전자상거래가 인증 체계, 보안 등의 문제로 인해 기업들의 이용이 제한적이라는 시장 상황을 포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기술로드맵 수립은 단순히 R&D 경영의 차원을 넘어 기업 경영 전반의 전략으로서 효용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로드맵 수립을 효과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유의해야 될 점들이 있다. 기업마다 처한 시장 환경이 다르고, 조직 문화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기술로드맵 수립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그리고 전사적 참여를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 또한 필수적일 것이다.
그런데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유의해야 할 점은 실제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보다도 이를 위한 초기 준비 작업에 더 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캠브리지대학의 조사에 의하면 성공적 기술로드맵 수립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초기의 과도한 업무 부담과 정보 수집 능력 부족이 지적된 것은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그림2> 참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서들간의 유기적인 협업을 바탕으로 충분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더욱이 기술로드맵 수립 과정이 기술로드맵 자체를 위한 업무라기 보다는 경영 전반의 혁신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라는 공감대가 전사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