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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이노베이션의 성공 가이드라인

부경(扶熲) 김기선 2006. 8. 10. 09:12
기술 혁신의 속도와 다양성이 중요해지면서 기업의 기술 개발 시스템이 폐쇄된 혁신 시스템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대응이 미비한 실정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개념과 가치, 실행을 위한 포인트를 살펴본다.  
  
최근 체스브루(Chesbrough) 교수가 제시한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개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한마디로 기업 내부의 폐쇄적인 기술 혁신 시스템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내, 외부의 다양한 원천을 이용하자는 주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 혹은 기술은 내부/외부/경쟁사에 상관없이 획득해야 하고, 이를 제품 개발과 연결할 때도 필요할 경우 외부의 아이디어,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림1) 참조>.  
 
일반적으로 기술혁신이 단일 기업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 온 오랜 전통에 비춰보면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최근의 경영환경 변화는 기존의 폐쇄형 구조를 강력히 위협하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경쟁은 기업 대 기업간의 1대1 싸움에서 승자와 패자가 가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네트워크 대 네트워크 전쟁으로 그 양상이 다양화, 복잡화 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다양한 부품을 구입해서 단순히 조립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부품이 연결되고, 상호 작용하는 디지털 시대다. 따라서 부품이 모듈화 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융합현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핵심 기술 인력의 이동, 기업을 대체할 만한 지식을 갖춘 제3의 연구기관, 기술 탐색 대행자의 등장으로 인해 굳이 기업 내부가 아니라도 외부에서도 충분히 기술 혁신의 사이클을 탈 수 있게 된 것도 주요 원인이다. 결국 이러한 시대 흐름의 변화를 타고 등장한 것이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폐쇄적인 혁신시스템의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은 최고의 혁신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모든 기술 개발과 제품 상용화를 기업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의 두 사례를 보면 폐쇄된 혁신 시스템이 가져올 수 있는 한계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일회용 카메라의 대명사로 불리던 폴라로이드. 이들은 디지털 카메라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경쟁사보다 먼저 관련된 기술을 상당부분 개발하였다. 렌즈, 광학 처리, 디지털 신호, 소프트웨어, 저장 기술 등 디지털 카메라와 관련된 모든 기술을 직접 개발한 것이다. 문제는 제품이 시장에 출시된 이후에 발생했다. 단순 기술, 소프트웨어 등을 아웃소싱한 경쟁 기업에 비해 가격이 무려 3배 이상 높게 책정될 수 밖에 없었다. 개발 비용에 수 억 달러를 투자했으니, 이를 회수하기 위해 경쟁사보다 가격이 높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이들이 중요하지 않은 기술에 투자할 비용을 핵심 부품, 핵심 기술에 투자하여 뚜렷한 차별화를 가져갔다면 어땠을까? 차라리 투자한 각종 기술을 다양한 라이센스 활동을 통해 경쟁 기업들과 협력업체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변신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폴라로이드의 이름은 혁신의 역사 한 페이지를 여전히 장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 FPD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Sharp. Sharp는 새로운 생산라인에 투자하면서 비용을 줄이기 위한 프로세스 단순화에 주력했다. 또한 더 큰 패널을 생산하면서 이에 따른 수율을 향상시키기 위해 제품 디자인을 수정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모든 과정이 내부에서 비밀리에 추진되었고, 다른 주요 공급 네트워크와의 협력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원하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유리 원판 공급회사인 Corning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주요 부품기업과의 과감한 오픈 협력관계를 진행하였다면 좀 더 빠르게 생산라인을 안정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 문제로 6개월을 허비했고, 그 6개월은 치열하게 전개되는 세대 경쟁에서 뒤처지고 남을 만한 충분한 시간이었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다양한 네트워크 
 
오픈 이노베이션은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크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물론 기업의 특성, 자원 등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산업의 특성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생명과학, 화학처럼 하나의 발견(Invention)을 통해 단번에 산업의 구도를 바꿀 수 있는 분야에서는 확장형 글로벌(Extended Global Network) 모델이 일반적이다. 이 분야는 성공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가능하면 광범위한 기술, 연구 결과를 적용하는 실험을 되풀이해야 한다. 따라서, 이미 정상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도 경쟁사보다 광범위한 외부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바티스는 2004년부터 독자개발에서 탈피해서 전세계 각 지역의 연구센터, 생명과학 회사들과 ‘NIBR Strategic alliances’라는 협력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16개 국가 250여 기관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제품의 수명주기가 짧고, 진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컨버전스가 대세로 자리잡은 IT 분야에서는 제한적 제휴 모델(Limited Strategic Partner ship)의 형태가 주로 나타난다. 이 모델은 다시 두 가지 형태로 세분화 할 수 있다. 먼저 대기업과 대기업간의 협력 모델이다. 모토로라가 최근 코닥, 구글, 야후 등과 신제품 협력을 발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특정 기능을 강화, 혹은 특정 니치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외부 자원을 끌어들인 것이다. 둘째, 대기업과 핵심역량을 갖춘 중소규모 기업들과의 네트워크이다. 휴대폰 업계가 연간 수 백대의 신제품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은 ODM, EMS 같은 형태의 기업들 덕분이다. 이러한 협력 형태는 빠른 제품 출시(Time to market), 원가 혁신 등을 위해 이루어진다.  
  
국내 기업들의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투자 
 
국내 기업들 역시 다양한 기술 원천, 새로운 역량에 항상 목말라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글로벌 기업들에 비하면 기술 역량이 떨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휴대폰 3G 관련 특허를 살펴보면 노키아, 에릭슨, 퀄컴, 모토로라가 전체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국내 기업은 아쉽게도 10위권에도 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은 직접 투자, 조인트 벤처, M&A, 기술 이전 등을 통해서 활발한 외부 기술 축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외부 기술획득에 대한 열망에 비해 아직까지 그 실행 능력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2005년 제조업 혁신 조사에 따르면 전체 비용 중 약 13%만이 외부 기술 습득을 위한 비용으로 지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2) 참조>. 또한 제품 개발 중 위부 위탁 비율은 5%에 그치고 있는 반면, 내부 개발은 약 85%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부족한 연구 개발 인프라 때문이다. 사실상 국내 R&D 투자의 40% 이상은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특허출원의 70%는 5대 대기업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력한 벤처 기업, 중소기업에 인력이 몰리지 않게 되고, 이들의 기술은 낮은 수준으로 인식된다. 또한 정부나 대학 같은 제 3자의 연구역량이 충분한 수준으로 올라와 있지 않다. 따라서, 굳이 대기업이 국내 벤처기업이나 외부 연구기관을 통해 기술을 습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또한 2000년에 기술이전 촉진을 위한 법을 제정했으나,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서는 기술 이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편이다. 게다가 대기업들이 과거 자신들이 주로 개발을 담당하다 보니,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이 점점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고 내부 혁신의 한계를 절감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경쟁력 확보 노력을 전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픈 이노베이션을 실제 실행할 때 역점을 두어야 할 포인트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오픈 이노베이션의 성공 포인트 
  
● 외부의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 
 
90년대 미국의 대학교에서 출원된 바이오 테크놀로지 관련 특허 수는 3배 정도 늘어난 반면, 이와 관련된 로열티는 5배가 늘어났다. 또한 국내 기업은 휴대폰 분야의 선두업체인 노키아에 비해 많게는 5% 이상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다양한 원천 기술의 조기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 주고 있다.  
 
원천기술이나 뛰어난 역량을 가진 기업을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허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더 많은 아이디어와 더 많은 기술을 접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기회를 찾을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 세계에 퍼져있는 수 많은 벤처기업의 기술을 직접 검색할 필요는 없다.   
 
기술에 투자하는 전문 벤처 캐피탈, 기술 이전 중개를 담당하는 제 3의 전문 중개업자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전문 화학기업인 DSM은 외부 기술 발굴을 위해 5개의 벤처 캐피탈 펀드에 2,500만 달러를 투자함과 동시에, 직접 10개의 벤처 기업에 지분을 투자하고 있다.  
 
최근 모토로라는 TTPCom이라는 기업을 인수했다. 이 기업은 미들웨어 솔루션을 가지고 있지만, 더욱 매력적인 포인트는 제3자 소유의 특허권을 중개하는 노하우를 가진 기업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모토로라는 이 기업을 통해 대학, 국영연구소, 개인 등이 확보하고 있는 기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모토로라 뿐만 아니라 모토로라의 주요 공급업체 모두가 새로운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 허브를 확보한 것이다.   
  
● 평가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기업이 외부 기술 획득을 위해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동안, 경쟁사라고 마냥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우리가 획득한 기술은 경쟁사도 획득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결국 누가 그 기술에 대한 빠른 평가를 통해 제품 상용화 단계로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평가하는 것이 내부 기술이 아닌 외부 기술이라는 점이다. 내부 기술이라면 오랫동안 그 개발과정을 지켜봐 왔고, 진행 과정에서 다양한 검증을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외부 기술의 경우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우선 외부 기술의 경우 과대 포장의 가능성과 접근 타당성을 고려해야 한다. 주로 벤처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의 경우, 이들은 자금난 등의 문제로 대기업과의 제휴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제휴를 성사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기술, 역량을 과장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반대로 자신들의 기술 도용을 우려해 완벽한 공개를 꺼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기업은 우선 이러한 제약조건을 염두에 두고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DSM은 외부에서 획득한 기술, 시장기회만을 전담해서 평가하는 DV&BD(DSM Venturing & Business Development)라는 조직을 갖추고 있다. 외부에서 획득하기를 원하는 새로운 기술은 다음과 같은 5C(Context, Customer, Competitor, Company, Costs)의 관점에서 평가된다. 이들은 신기술 획득에 대한 보고가 올라온 후 1달 이내에 이러한 1차 심사에 대한 모든 것을 완료한 후, 획득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기술 획득 대상 기업과는 사전 계약을 통해 완전한 정보 오픈을 요구하고, 기술 획득에 실패했을 때 이에 따른 보상금을 제공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 문제 해결을 위한 지식 브로커가 필요하다  
 
외부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공동으로 상품을 개발하는 과정에는 이에 따른 수업료가 들게 마련이다. 시장, 고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조직 내에서도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데 하물며 많게는 수십 개의 기업이 참여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에서는 필연적으로 상당한 갈등, 문제해결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이 분출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 및 다양한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한데, 이는 자칫 잘못하면 오해나 신뢰를 해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 해결은 제도나 시스템 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결국 사람이 직접 관여해야 한다. 즉,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지식 브로커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식 브로커란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사람들을 활용하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야 될 것인가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실행할 수 있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식 브로커는 문제 해결에 대한 방향성과 명쾌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또한 다양한 구성원들간에 존재하는 지식 격차를 해결하는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  
 
반도체 장비를 제작하는 두 기업이 공통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두 조직의 장비는 비슷했지만, 접근하는 프로세스는 전혀 달랐다. 문제는 두 방법 모두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는 점이다. 양쪽의 엔지니어는 프로세스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했지만, 방법론 측면에서는 서로 자신들의 방법이 더 우위에 있다고 주장할 뿐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지식브로커가 GaSonic의 CEO인 David Toole이었다. 그는 양쪽 팀에게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강조하면서 양 쪽 프로세스의 장점을 살리기 위한 2단계 접근법을 제시했다. 상호 토론 과정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를 지식 브로커가 투입되어 조율한 것이다. 서로 다른 기술, 혁신 방법론 등을 충분히 조율할 있는 지식 브로커의 존재는 프로젝트 진행의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된다.  
  
오픈 이노베이션, 오픈 마인드에서 출발하자 
 
대부분의 기업은 자신들이 직접 개발하지 않은 기술이나 연구 성과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을 보이게 마련이다. 이른바 NIH(Not Invented Here) 현상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이러한 ‘그들만의 리그’가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관성을 없애는 것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이 출발해야 한다. 또한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해서는 내부, 외부와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날 수 있는 개방적인 문화가 필요하다. 소위 창조적 갈등을 활성화 하는 기업의 마인드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기업의 가장 좋은 파트너는 소비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소비자가 기업에게 지속적으로 좋은 의견을 전달하면서, 소비자가 실질적으로 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시스템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오픈 이노베이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