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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면 성실은 미친짓이다” 거꾸로 본 창조경영

부경(扶熲) 김기선 2007. 12. 9. 21:08
“근면 성실은 미친짓이다” 거꾸로 본 창조경영
김정운 명지대학교 교수 (문화심리학)

 
21세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근면성실하기만 한 사람이다. 왜? 근면, 성실해서 되는 일들은 이제 기계가 다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구조조정할 때, 가장 먼저 정리되는 부서는 근면성실하기만 한 부서다. 그런 종류의 일들은 이제 아웃소싱으로 해결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우리가 1960, 1970년대에 중동달러를 벌기 위해 나갔던 것처럼, 우리보다 훨씬 근면 성실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기업의 CEO들은 직원들에게 여전히 근면, 성실하라고 한다. 고속성장의 산업화 시대에서 성공을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침형 인간’은 가라

21세기를 20세기적으로 경영하는 한국식 언밸런스(unb alance)의 압권은 ‘아침형 인간’이다.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면 성공한다는 이야기에 이 땅의 사내들은 흥분하여 다시 허리띠를 부여잡는다. “그래. 우리는 새벽종이 울리면 너도 나도 일어났어. 맞아. 그래야만 해.” 이제까지 참고 인내하는 삶을 살아온 사내들은 오래된 ‘새벽의 추억’을 되살린다. 성공은 하고 싶은데, 아는 방식이라고는 근면성실한 것 밖에 없다. 아, 그러나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방식으로는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그 방식이 옳다면 이미 성공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자. 근면, 성실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참고 인내하는 방식으로 근면, 성실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사는 게 재미있으면, 일하는 게 재미있으면 근면, 성실하지 말라고 해도 근면, 성실해진다. 순서를 바꾸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거짓말이다. 인내가 쓰면, 열매도 쓰다. 도대체 열매의 단 맛을 겪어 봤어야 그 단맛을 즐길 것 아닌가. 21세기는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하다. 지금 사는 게 재미있는 사람이 나중에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 21세기의 핵심가치는 ‘재미’다. 노동기반사회의 핵심원리가 근면, 성실이라면 지식기반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원리는 재미다. 새로운 지식은 재미있을 때만 생겨난다.
지식은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다. 저 유명한 러시아 심리학자 루리아(Luria)의 실험을 예로 들어보자. ‘도끼, 망치, 나무, 톱’. 이 네 가지 중에서 하나를 빼라면 당신은 무엇을 빼겠는가? 대부분의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은 나무를 뺀다. 다른 것들은 도구이고, 나무만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도구’와 ‘대상’이라는 하는 ‘추상적 지식(abstract knowledge)’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똑같은 질문을 러시아 벌목공들에게 던지면 이들은 잠시 고민하다가 망치를 뺀다. 왜? 나무 없는 도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다 필요하겠지만 구태여 하나를 빼라면 상대적으로 불필요한 망치를 빼겠다는 것이다.

벌목이라고 하는 것은 ‘실천적 지식(practical knowle dge)’이다. ‘도끼, 망치, 나무, 톱’이라는 동일한 정보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계 짓는 추상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지식체계다.

21세기는 이렇게 전혀 다른 지식체계들 간의 경쟁이다. 누가 먼저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를 뒤흔들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가에 따라 생존이 결정된다.

■‘재미’를 부활시켜라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 즉 지식은 인지체계다. 연역법과 귀납법에 기초한 인지체계는 외부충격 없이는 절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사례에서 법칙으로, 혹은 법칙에서 사례로 끝없이 순환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유행했던 컴퓨터와 인간의 뇌를 비교하는 연구가 오늘날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하는 까닭도 ‘새로운 것’의 출현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알고리즘에서 새로운 것은 나오지 않는다.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뒤흔들어 새로운 것을 나오게 하는 것은 정서적 충격이다. 이를 퍼스(Peirce)는 ‘유추법’이라 했다.

창의적 인간들의 공통된 특징은 정서적 충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천재로 알려진 이들의 대부분은 성격이 괴팍하거나, 정신질환에 시달리거나 동성연애자들이다. 혹은 변태적 취미를 숨어서 즐기기도 한다. 남들과는 다른 정서적 경험이 새로운 인지체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작품의 배후에는 항상 이런 종류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숨겨져 있다. 하지만 창의적 존재가 되겠다고 느닷없이 동성연애자가 되거나 변태적 취미를 찾아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고통과 같은 부정적 정서만이 인지체계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재미와 감동과 같은 긍정적 정서도 그 효과는 동일하다. 근대성은 재미와 감동이라는 긍정적 정서의 억압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이전 세대의 천재들은 괴롭고 고독했다. 그러나 21세기는 억압되었던 재미와 행복이라는 가치의 복원에서 출발한다. 최근 한 연구에 의하면, 미국의 잘 알려진 천재들은 한결같이 ‘가벼운 조증(hypermania)’을 앓고 있다고 한다.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른다는 이야기다.

한국사회의 창조적 전환은 재미라는 가치의 복원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까지 재미있으면 죄의식을 느끼도록 사회화되었다. 행복하면 죄의식을 느끼도록 의식화되었다. 그러니 ‘창조경영’, ‘창의적 발상’을 이야기하면서도 ‘아침형 인간’이 될 것을 강요하는 황당한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창조경영을 이야기하면서 근면, 성실을 주장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기뻐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축제적 삶이 우리의 미래를 구원해준다. 가슴 벅찬 감동의 예술적 경험만이 귀납법과 연역법의 무한 순환에서 우리를 구원해준다. 일터는 예술가의 작업장이 되어야 한다. 아침형 인간은 가라!
■한국기업 창조경영 왜 안되나
“수천명 신입사원들 ‘매스게임’이 미덕? … ”
[스페셜 리포트] 창조 경영의 세계
“그러니까 창의적 천재를 못키우지” 

김진우 연세대 경영대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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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에게 디지털 신상품이나 혁신적인 모바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조직 구성에 대해 자문하면서 창조적 기업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창의성이 흘러 넘치는 문화였다. 창의적 인재를 배출하기 위한 기업 문화에는 크게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조직 구성원 간의 이종 결합(fusion)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융합했을 때에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창의적인 서커스 공연 ‘퀴담(Quidam)’으로 유명한 시르크 뒤 솔레이유(Cirque du Soleil?태양의 서커스단)는 일사불란한 단결력을 ‘최고의 악덕’으로 사규에 명시하고 있다. 집단의 의견에 순응해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갈등, 그에 대처해 나가는 고민 속에서 창의적인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년 모든 신입 사원을 모아 놓고 매스게임을 하면서 일사불란한 단결력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기업에서 창조경영을 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조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름으로 인해서 생기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퓨전의 문화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구성원들 간 활발한 교류(interaction)다. 교류를 통해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모일 때 생겨나는 갈등의 부정적 요인을 줄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올 여름 창조적 신상품 개발로 유명한 디자인 회사 아이데오(IDEO)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IDEO의 근무 환경이나 제도는 이미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매일 아침에 모든 디자이너와 개발자 그리고 방문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면서 잡담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회사 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이었다. 직원들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드높은 천장에, 썰렁하기 짝이 없는 국내 대기업들의 본사 로비를 떠올렸다.

1939년 설립된 HP는 이미 창업 초기에 ‘배회(徘徊) 관리(MBWA: Management by Wandering Around)’라는 흥미로운 이름의 사내 교류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배회 관리란 간부들이 특별한 스케줄 없이 일상적으로 회사를 돌아 다니면서 구성원들과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직원들은 별다른 이슈가 없어도 언제든지 간부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형 의사소통 제도다. 비공식적 의사소통을 강조하는 ‘HP식 경영(HP Way)’의 문화적 상징인 셈이다.

마지막 요소는 재미(interesting)다. 마치 휘발유가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긍정적인 에너지인 것처럼, 재미는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적인 활동을 하게 만드는 심리적인 에너지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Bain&Company)는 오직 ‘재미’를 위해 사무실의 근무 자리를 바꾸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일반적으로 사무실에서 바깥 풍경이 내다보이거나 인적이 드문 ‘명당 자리’는 연차나 직급이 높은 사람의 특권 중 하나다. 그러나 베인은 간부들 자리를 한 데 섞어 추첨 방식으로 자리를 배정하도록 했다. 순번은 이름에서 한자 획수가 가장 많은 사람 순으로 ‘공정하게’ 정했다. 다음날 새로운 자리를 찾은 직원들 책상 위에는 이사 기념액자와 개인 이름이 새겨진 노트가 든 선물상자가 놓여졌고, 한 바탕 소란이 끝난 뒤에는 돼지머리와 떡을 곁들인 한국식 고삿상이 차려졌다.

국내의 한 브랜드컨설팅 업체 직원들은 ‘월요병’이 없다. 월요일 아침마다 영화관으로 가서 조조영화를 보는 게 그 주의 ‘업무 시작’이기 때문이다. 아침 보고 등 특별한 일로 빠지는 직원들을 제외하고 절반 가량이 이 ‘월요 시네마’의 혜택을 보고 있다. 영화감상을 한 뒤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회사로 출근하면 보통 1시30분. 피하고 싶었던 한 주의 업무를 기분 좋게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남들이 창조한 것을 가져다가 원래 것보다 싼 값에 만들어 많이 팔아서 이윤을 냈다. 그런데 기업들이 발전하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베낄 것이 없어졌고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 왔다. 세상을 바꾸는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서는 기업의 문화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자신의 기득권과 권리만을 주장하던 문화에서 서로 다름으로 인한 갈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퓨전’의 문화, 일방적인 지시와 복종에서 양방향 의사소통으로 나아가는 ‘교류’의 문화, 그리고 업무 소홀로 여겨지던 ‘재미’를 효율적인 업무의 제1 요소로 인정하는 기업 문화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