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실적 좋으면 교육에 2배, 나쁘면 4배로 확대를
기업 최고교육책임자들이 말하는 인사관리
"경영실적 좋으면 교육에 2배, 나쁘면 4배로 확대를
주입식 교육보다는 직원들 잘 관찰하고 대화하길"
불황의 골이 깊어질 조짐을 보이자 몇몇 기업들은 벌써부터 예정됐던 채용 계획을 취소하고 있다. 직원 교육을 무기한 연기한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과거 외환위기 당시 대규모 감원과 구조조정을 경험했던 대기업 인사 책임자들은 오히려 불황기를 이겨낼 방법은 인재 육성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10월 28일 IGM이 개최한 '제1회 CLO(chief learning officer?최고교육책임자) 벤치마킹 세미나'에 참석한 LG전자, 두산, SK텔레콤, 삼성전기, 포스코, LG화학 등 주요 대기업의 인사 책임자들은 "구조조정 때문에 교육을 소홀히하면 나중에 몇 배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도 이전의 기업문화와 시스템을 살리기 어렵다"며 교육과 인재관리에 관한 실전(實戰) 경험을 털어놓았다. 국내 최고 기업들의 인사 전문가들이 이날 세미나에서 내놓은 불황기 인재 육성 핵심전략은 다음과 같다.
■불황기에는 교육을 줄여야 하나?
→ 평소보다 교육에 4배 더 투자하라
"경영 실적이 좋으면 교육에 2배를 투자해라. 경영 실적이 안 좋고 어려우면 교육에 4배로 투자를 늘려라."
미국 유명 경영학자 톰 피터스(Peters)의 말이다. 영국의 금융회사 로이드TSB그룹(Lloyds TSB Group)과 HSBC는 이 말을 그대로 실천했다. 지난 1992~1994년 경기 침체 때 이 회사 경영진은 임직원 교육과 훈련 투자비를 더 늘렸다. 그들이 속한 업종의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능력 있는 직원들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화를 감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한 기업들은 결국 위기를 성공으로 바꿨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최근 '금융위기가 변화의 촉매가 될 수 있다'는 기사에서 "로이드나 HSBC가 보여준 것처럼 이번 금융위기 속에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꾸준히 사람에 투자한 기업들이 성공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어디에 투자하나?
→ 스킬(skill?기술)보다는 태도 교육에 투자하라
격주로 열리는 LG전자 임원회의에서는 희한한 광경이 펼쳐진다. 남용 부회장을 비롯해 4개 사업본부장과 CTO(기술), CFO(재무), CHO(인사), CSO(전략), CMO(마케팅) 등 분야별 최고책임자들이 회의 시작에 앞서 15분 동안 콜센터 직원이 고객과 통화한 내용을 청취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고객의 니즈(needs)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하나에 2~3분 걸리는 녹음 내용 5~7개를 연속해서 듣다 보면 고객들의 불만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욕설을 들어야 할 때도 있다.
이 과정을 통해 LG전자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고객 불만이 많았던 부분은 제품의 결함이나 서비스 직원들의 실력 부족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객을 대하는 AS 직원의 태도가 문제였다.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오거나 불친절했다던가 하는 부분에 고객들은 마음이 상했고, 화를 냈다. LG전자는 태도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했고 이것이 교육에 직접 반영됐다.
LG전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왜 고객이 왕인가?'를 직원들에게 인지시키고 내재화하는 교육을 실시했다. 지난 5월 LG전자의 인사책임자로 영입된 영국 출신의 레지날드 불(Bull) 부사장은 "교과서적인 리더십 교육을 할 바에는 차라리 혼자 책을 읽게 하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로 태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계적 생활용품 전문기업 유니레버(Unilever)가 과거에 '리더십 실천(Leadership into Action)'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40명 정도 직원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1주일 동안 아무 주제 없이 만나도록 했다. 그랬더니 마치 양파처럼 스스로를 벗기기 시작했다. 회사와 일, 적성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태도 변화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
■어떻게 교육하나?
→ 주입식 교육(teaching) 대신 관찰하고 대화하는 코칭(coaching)을 하라
인사 전문가들은 직원을 한데 불러 모아서 하는 '시간 때우기 식' 단순집합 교육은 가급적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보다는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상호 의사소통을 통해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코칭(coaching)의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코칭은 직원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단순한 행동이 아닌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과는 다르다.
유니레버는 각 직원이 한 해의 계획을 세운 후 상사와 1대1 코칭 시간인 PDP(performance development plan?성과개발계획) 과정을 거친다. 우선 자신이 세운 계획과 관련해 교육이나 추가 지원이 필요한 부분을 설명하고 이를 상사와 조율해 전반적인 교육 내용을 짠다. 그리고 일을 진행하면서 중간 검토를 실시해 상황을 점검한 후 연말에 전반적 교육에 대해 다시 코칭을 실시한다. 이 코칭 과정에서 내년 계획을 다시 짠다. 이렇게 지속적인 코칭 과정 속에서 직원들은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 보완하고 재능은 더욱 발전시킴으로써 인재로 성장하게 된다. 국내 기업들이 가장 취약한 것이 바로 이 코칭 방식이다. 코칭을 위해서는 우선 대상 직원을 꾸준히 관찰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의 '평가' 방식에만 익숙해져 있는 상사와 부하직원도 이런 방향으로 관계를 바꿔나가야 한다.
한 대기업에서 코칭 시스템을 도입했다. '부하의 업무환경은 어떠한가?' '그 사람의 특징은 어떠한가?' 등의 질문을 던지고 리더들에게 조직원(부하)들을 관찰한 결과를 써내게 했다. 그런데 대다수는 답변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일을 시킬 줄만 알았지, 직원을 잘 관찰하지는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세미나에 참가한 한 CLO도 "사람을 충분히 관찰해야만 코칭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현실에서 많은 시간을 관찰에 쓰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라며 코칭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부하직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확인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역량이 성장하면 그에 맞는 더 큰 임무를 준다"며 "이런 과정들이 조직을 크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인사 시스템은 어떻게 운영해야 하나?
→인사관리와 교육개발을 통합해 효과를 극대화하라
인재 육성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해야 한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인풋(input?투자)만 있고, 아웃풋(output?생산)이 없으면 곤란하다. 인재를 단순히 평가하고 코칭하는 데서 끝나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교육은 변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직원들을 독려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교육받은 것을 현장에서 반드시 활용할 수 있도록 인사관리를 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의 효과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려면 1대1 코칭에서 더 나아가 '이 사람을 어떻게 어디에 배치해야 더욱 발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이 사람은 이런 점이 부족하니 어떤 교육을 받으면 좋겠다'는 문제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결국 인사이동 및 배치 등의 인사관리와 교육, 훈련 등의 인사개발 기능을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IGM이 세미나에 앞서 국내 대기업 CEO 46명, CLO 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내용이 확인됐다. '인사관리 부서와 교육훈련 부서 간의 업무 협조가 원활한가?'라는 질문에 이 두 기능을 동일한 사람이 관리하거나 정기적인 미팅 등으로 인해 서로의 정보를 많이 공유하는 기업일수록 '협조가 원활하다'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또 이러한 기업일수록 직원들 모두가 '인재 육성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데 큰 가치를 두고 있었다.
■비즈니스 전략과 교육을 연계하라
LG전자는 부장과 상무급을 대상으로 PBL(product business leader)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PBL은 TV나 냉장고, 에어컨 등 상품 모델별로 한 제품을 기획해서 출시하고 단종할 때까지 라이프 사이클의 전 과정을 맡아 손익을 책임지는 인물이다.
즉, PBL은 '상품을 어떻게 시장에서 성공시킬 것인가?'에 대한 총체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사람이다. PBL의 임기는 각자 담당하는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결정되는데, 최소 1년에서 최대 3년 정도 걸린다. 현재 PBL에 임명된 사람은 대략 100명이다.
PBL은 혼자서 전 과정을 맡다 보니 전략수립 과정에서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부분이 드러날 수 있다. 이때는 마케팅, 구매, 영업 등 해당 분야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LG전자는 이들을 대상으로 분야별 철저한 실무중심의 교육을 실시해, 곧바로 현장 적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인재를 효율적으로 육성하고, 그 능력을 현장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성과를 인정받은 PBL은 장차 TV나 휴대폰 등 주요 사업부를 담당하는 책임자로 성장하게 된다.
한솔그룹은 기업의 비전과 가치를 전략과 교육에 연결시키고 '놀이'와 '재미'의 요소까지 도입해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한솔그룹은 윤리경영이라는 비전과 가치를 직원들에게 심고자 했다. 그러나 다들 뻔한 얘기라 생각하고 지루해 했다. 그래서 교육 프로그램을 게임 방식으로 만들었더니 경쟁적이고 몰입적인 교육 분위기가 조성됐다. 한솔그룹 박현우 상무는 "단순히 내용만 알게 하는 것보다 전략적으로 실행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CEO와 CLO는 전략적 파트너 관계가 되어야
IGM의 설문조사 결과 CEO와 CLO 사이에는 미묘한 인식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기업의 비전과 가치를 '인사제도에 잘 반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CEO는 59.5%가 '예'라고 답했다. 반면, CLO는 92.9%가 '예'라고 답변했다. 이런 의견차이는 CEO가 추구하는 생각과 가치를 CLO가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인사 책임자들은 CEO와 의사소통을 더 강화하고 기업 비즈니스를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비즈니스 전략과 교육을 연계해서 실행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CEO 65%가, CLO는 85.7%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CLO가 중요한 의사결정 회의에 많이 참여한 기업의 경우 긍정적인 대답이 많았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 매우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는 CEO가 CLO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들을 진정한 파트너로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CEO들은 기업의 최고교육책임자인 CLO가 반드시 가져야 할 핵심역량으로 교육과 비즈니스를 접목시키는 전략적인 사고(思考)능력을 꼽았다. 이밖에 대인관계 능력 및 인재관리에 대한 열정과 지식, 기업의 비전과 전략을 이해하고 조직에 잘 전파하는 능력 등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CLO(최고교육책임자?chief learning officer).
임직원 채용과 배치 위주였던 기존 인사(人事) 담당 임원의 업무를 보다 확장시켜 교육을 총괄하고 조직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임원을 말한다.
[최철규 세계경영연구원(IGM) 부원장]
[이성훈 산업부 기자 inout@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