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익히면 무의식 중에도 창의력이 발휘된다
몸으로 익히면 무의식 중에도 창의력이 발휘된다
Based on “Embodied metaphors and creative acts” by Angela K.-y. Leung, Suntae Kim, Evan Polman, Laysee ong, Lin Qiu, Jack A. Goncalo, Jeffrey Sanchez-Burks (in press Psychological Science)
왜 연구했나?
창의성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능력이다. 창의성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새로움과 유용성이다. 새롭기만 하고 유용성이 없으면 기괴할 뿐 현실의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유용한 데 새롭지 않다면 누구나 다 알고 활용하는 능력이기에 그만큼 가치가 떨어진다. 창의적인 사고방식에는 수렴적(convergent) 사고와 확산적(divergent) 사고가 있다. 수렴적 사고란 문제해결을 위해 단일의 최적 해법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확산적 사고는 문제해결에 필요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는 이러한 수렴적 사고와 확산적 사고를 나타내는 표현이 있다. 예를 들어 확산적 사고를 나타내는 표현으로는 “한편으로는…”이나 “틀에 박힌 생각에서 탈피” 등이 있다. 둘 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도출과 관련된 표현이다. 수렴적 사고는 “중지를 모으다”는 표현에서 나타난다. 여러 사람의 지혜, 즉 다양한 생각을 모아 단일의 최적 해법을 찾고자 하는 표현이다. 이는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현장에서 많이 쓰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표현이 실제로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될까? 만일 도움이 된다면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창의성 향상에 도움이 될까?
무엇을 연구했나?
사람의 몸과 마음은 하나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며 마음은 몸의 기능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는 심신이원론을 주장했지만 현대 과학을 통해 제시된 근거는 데카르트식(Cartesian) 이원론과는 거리가 멀다. 체화 인지(embodied cognition)는 몸과 마음이 하나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체화 인지란 말 그대로 사람의 생각은 몸의 작용의 결과라는 이론이다.예를 들어 마음의 작용인 기분 좋은 느낌은 몸의 기능을 통해 작동한다. 기분 좋은 느낌에 관여하는 몸의 작용은 다양하지만 그중 하나가 얼굴 근육이다. 기분 좋은 상태는 입술 양끝의 근육이 위쪽으로 살짝 들려지면서 미소 짓는 얼굴로 나타난다. 실제로 이 근육을 인위적으로 끌어 당기면 기분이 긍정적으로 바뀐다. 반대로 끌어 내리면 기분이 부정적으로 바뀐다. 이런 이유로 얼굴 근육을 마비시켜 주름을 제거하는 보톡스 성형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눈 양쪽에 잡힌 주름이 보기 싫다고 보톡스로 얼굴 근육을 마비시켜 주름을 제거하면 미소 짓는 능력까지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얼굴 주름은 펴졌지만 그만큼 좋은 기분은 포기해야 한다. 이처럼 체화 인지 작용은 광범하게 관찰할 수 있는데 창의성의 발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창의성을 북돋기 위해 “틀에 박힌 사고를 탈피하라”거나 “중지를 모으자”와 같은 표현을 몸으로 나타낼 경우 체화 인지의 원리가 작동한다면 실제로 확산적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수렴적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어떻게 연구했나?
싱가포르경영대, 난양기술대, 미국 미시간대, 뉴욕대, 코넬대 등 공동연구진은 모두 다섯 차례의 실험을 거쳐 체화된 인지작용을 통해 창의성이 향상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실험1에서는 “한편으로는… 또 다른 한편으로는…”의 표현을 몸으로 표현하도록 했다. 실험조건의 참가자는 대중연설을 하면 양손을 쓰도록 했고 대조집단의 참가자들은 한 손만을 사용하게 했다. 실험2와 실험3에서는 “틀에 박힌 생각에서 탈피”를 체화했다. 실험2에서는 상자를 놓고 그 바깥 혹은 상자 안에 앉아 생각을 하게 했고, 실험3에서는 자유롭게 걷거나 네모난 줄을 따라 걷도록 하면서 창의성을 검사했다. 실험4에서는 몸을 직접 움직이는 실험1, 2, 3과 달리 가상현실을 이용해 심상(mental imagery)만으로도 체화 현상이 나타나는지 검증했다. 실험5에서는 “중지를 모은다”의 표현의 체화를 통해 창의성의 수렴적 사고와 확산적 사고의 차이점을 규명했다.
무엇을 발견했나?
● 실험1: 40명의 실험참가자들에게 2가지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과제와 체화 인지작용에 관련된 과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도출과제는 대학교 빌딩의 새로운 용도를 찾도록 하는 과제다. 체화 인지과제는 건물의 새로운 용도에 대한 생각을 발표하면서 대중연설을 하는 것처럼 양손을 앞쪽으로 들어 쭉 뻗으면서 두 손을 마주잡도록 했다. 두 손을 잡을 때 한 번은 오른손이 위로 가도록 하고, 다른 한 번은 왼손이 위로 가도록 했다. 대조집단의 참가자들에게는 오른쪽 손만 들어 쭉 뻗으라고 했다. 참가자들의 발표 내용은 모두 녹음해서 분석했다. 분석내용은 용도에 대해 도출해낸 아이디어의 수였다. 분석결과 오른손만 들고 발표한 참가자들보다 양손을 들면서 발표한 사람들이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했다.
● 실험2: 102명의 대학생들이 실험에 참가했다. PVC파이프로 가로x세로x높이 1.5m 크기의 상자를 만든 다음 실험조건의 참가자들은 상자 바깥에서 창의력을 검사했고 대조집단의 참가자들은 상자 안에서 창의력을 검사했다. 창의력은 원격연결검사(Remote Associates Test: RAT)를 이용해 검사했다. RAT는 제시된 단어 3개를 본 후 제시된 단어의 공통되는 단어를 제시하도록 하는 과제다. 서로 다른 것을 연결시켜 단일의 해결책을 찾는 수렴적 창의성을 측정하는 데 사용된다. 분석결과 상자 안에서보다 바깥에 있던 참가자들의 창의성이 높게 나타났다.
● 실험3: 102명의 실험참가자들을 3개 집단으로 나눴다. 창의조건의 참가자들은 실험실에서 자유롭게 걸어 다니면서 창의성을 검사했고 대조집단의 참가자들은 실험실 바닥에 그어 놓은 사각형 모양의 줄을 따라 걷거나 가만히 앉은 채로 창의성을 검사했다. 창의성은 애매한 모양의 그림을 보여준 뒤 그 그림에 대한 설명문을 작성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측정했다. 분석 결과 가만히 앉아 있거나 줄 위를 따라 걸어 다닌 참가자들보다 자유롭게 걸어 다닌 참가자들의 창의성이 더높게 나타났다.
● 실험4: 35명의 실험참가자들에게 ‘세컨드 라이프와 같은 3D가상현실프로그램에 접속하도록 한 뒤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고 조작하도록 했다. 실험조건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아바타가 자유롭게 걷게 하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도출하도록 했다. 대조집단의 참가자들은 아바타를 실험3처럼 사각형 모양의 줄을 따라 걷도록 했다. 분석 결과 아바타를 자유롭게 걷도록 조작한 참가자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더 많이 도출해 냈다.
● 실험5: 39명의 실험참가자들에게 체화 과제를 수행하도록 한 뒤 수렴적 창의성과 확산적 창의성을 측정했다. 창의성 측정에 앞서 실험을 위해 둥근 모양의 컵 받침을 반으로 잘라 양쪽에 쌓아 놓았다. 수렴적 사고 조건의 참가자들에게는 양쪽에 쌓인 반달모양의 컵 받침을 가운데로 이동시켜 원래의 둥근 모양으로 맞추어 쌓아 놓도록 했다. 수렴하는 행동을 하도록 한 것이다. 대조 집단의 참가자들은 양쪽에 쌓아놓은 반쪽 컵받침을 조합하지 않고 단지 가운데로 이동만 하게 했다. 분석결과 조합과제를 수행한 참가자들은 대조집단에 비해 수렴적 창의성에서는 높은 점수를 보였지만 확산적 창의성에서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연구 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나?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의 극복이 필요하다. 그러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는 명시적 지시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지”라는 의식적인 의도로 고정관념을 극복하기는 어렵다. 고정관념의 장벽은 무의식 수준에서 형성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을 극복하기 위해 고정관념에 대해 신경 쓰다 보면 오히려 고정관념이 강화되는 역설적 현상에 빠지기도 한다. 따라서 고정관념의 극복은 고정관념에 대한 부담감 없이 무의식적 수준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 연구는 체화 인지를 활용하면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창의성을 향상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도출하거나 대안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확산적 사고를 나타내거나 기존에 도출된 다양한 아이디어에서 공통점을 찾아내 단일 해법을 찾아내는 수렴적 사고를 나타내는 신체활동을 함으로써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확산적 창의성을 북돋기 위해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사용하거나 제약된 물리적 공간에서 빠져나가는 행위를 시도할 수 있다. 또 이 연구는 창의성을 북돋기 위한 실용적 해법뿐 아니라 체화 인지 이론의 지평을 넓히는 데도 기여했다. 몸과 마음은 분리된 게 아니라 긴밀히 연결됐다는 또 하나의 근거를 제시하면서 체화 인지가 지식의 활성화뿐 아니라 지식의 생성에 작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문제해결이 안될 때,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 어려울 때, 즉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할 때는 ‘몸의 틀’을 바꾸도록 해보자. 다양한 아이디어나 대안적 해법이 필요할 때면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사용해 보거나, 거꾸로 서보거나, 사무실에서 벗어나 탁 트인 공간으로 이동해 볼 수 있다. 이런 행동은 확산적 사고에 도움을 준다. 반면 이미 다양한 아이디어가 도출된 상황에서 단일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중지를 모으는 행동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연구에서 사용한 것처럼 반달 모양의 컵받침을 원래의 모양으로 맞추기 등의 행동이 수렴적 사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안도현 성균관대 선임연구원
필자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Colorado State University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 석사, University of Alabama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설득에 미치는 영향이다.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에서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