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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살아가는 이야기

부경(扶熲) 김기선 2006. 2. 12. 14:57

좋은 이야기[요즈음 그럭저럭 살아가는 이야기]

 

오래 전 일본에 갔을 때 한국식당 중에 '빠리빠리'라고 쓰여진 집을 보았습니다.

우리 말의 '빨리빨리'에 해당한답니다.
대단히 큰 인기를 끌고 있더군요.
이런 우리의 '빨리빨리'정신은 대부분 부정적이다가 근래에 와서 IT산업 발전이라든가하는 데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 생활도 '빨리빨리'하기만 하면 행복할까요?

아침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는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살아 갑니다.

"더 좀 빨리하지!"
"좀 제대로 할 수 없어?"
"하는게 그렇게 느려서야..."
"그거 하고도 월급 받기 바래?"
"기왕에 하는 건데 좀더 제대로 하지!"

대충 뭐 그런 말들입니다.
천천히, 생각하면서, 쉬엄쉬엄, 단계적으로, 서둘르지 말고, 뒤도 돌아보면서...
이런 말들은 가물에 콩 나듯이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티벳의 행복지수가 생각 나지요.

일중독을 영어로는 Workaholic이라고 합니다만,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한번 다음 8 가지 질의 문에 '예' 또는 '아니요'로 답변을 해 보시지요!

 

1) 최근에 자신이 너무 많은 시간동안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2) 직장 일을 집에 갖고 와서 새벽까지 작업한 적이 있는가?
3)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책상 앞에 앉아서 열심히 일을 하였는가?
4) 일을 한 주말시간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또는 자신의 여가를 위해서 사용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5) 돈을 벌어 생활하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인데, 당신은 일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닌가?
6) 일이 당신의 일상생활에 중심이 되어버렸는가?
7) 당신이 일을 생각하지 않는 시간은 오직 하루에 잠을 자는 3-4 시간뿐인가?
8) 당신은 돈을 벌고, 목표를 달성해서, 가족의 생계에 최선을 다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매일 하루에 16 시간 동안 열심히 일을 하는가?

만약 위 질의문 중에 [3가지 이상]에 해당되면 일중독자라고 봐야 한답니다.
불행하게도 저 경우도 4-5가지는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중년들의 하루하루 고달픈 생활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어떤가요.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에 들어오면 또 다른 상황이 벌어집니다.
가끔씩 이집이 내 집인가?하고 생각이 들거든요.
마땅히 대화할 상대가 없는 탓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대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가장인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서 일 수도 있습니다.

아내는 아내 대로 노상 집안일이나 교회일로 시간을 빼앗기니 같이 하지 못한 아쉬운

 순간들이 많구요.
아이들은 얼굴 삐끔 내밀고 "다녀 오셨어요?"하고는 다시 컴퓨터에 매료되어 버리고...
얼마전부터 암으로 고생하시는 일흔 중반의 어머니는 가슴에만 마음으로만 안타까울 뿐이고...
가장으로서 내 자리는 어디고 무엇을 해야 하느건가?하는 의문이 듭니다.

주위의 대부분의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아기자기한 남편은 못 되는 걸 잘알고 있고 반성합니다.
본시 타고난 천성이 그렇거니와 여자에 대한 애정 표시는 어쩐지 겸연쩍고 어색하기만 하기만 합니다.
남자의 체통(?)을 중시하는 전통적 유교 교육의 결과일까요?

중년의 남자란 고독에 익숙해져야 우울증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하데요.
번잡함 보다는 자신만의 고독 속에서 그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중에는 죄수생활에 적당한 유형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위기라든가 우울한 상황에서도

 가장 빨리 극복한다는 얘깁니다.

우리도 찾아 보면 벗이 될만 한 것들은 주변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손만 뻗치면 이 외로운 가장을 달래 줄 것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리모컨만 누르면 웃고 떠드는 텔레비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쌍방향 소통도 가능한 인터넷,
거의 매일같이 배달되어 오는 메일 메시지들,
뒷산에 오르면 지저귀는 새들과의 교감,
돌 틈으로 흘러나오는 샘물 한 모금,
한시간 남짓 차로 달려 가서 먹는 '간재미'에 소주 한 잔,
뒷골목까지 찾아가서 먹는 '자인 뭉티기'의 싱싱한 육회,
이런 것들이 바로 그런 재미를 줍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위안을 삼고 작은 행복을 느끼는 것들은 그런 것들에 있지 않습니다.

"학교 공부는 어떻니?" 아들에게 물어 봅니다.
"그냥 그래요." 그걸로 끝입니다.
나도 더 이상 무얼 물어보아야 할 지 생각하다가 그냥 "좀 열심히 해라!"하고 그만둡니다.
열심히 해라고 해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런데 역시 아들도 제 앞일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군대 가야할 시기에 대한 얘기, 학교 친구들 얘기, 학과공부얘기 등등
아주 짧고, 조금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 속에서 사는 재미를 느껴 갑니다.

딸 아이는 요즘 인형과 관련한 일거리를 하고 있습니다.
좀 생뚱맞은 면이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요청받은 인형 수선(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어 주는 일)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무척 재미있어 하고 그 방면에도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더 공부도 해야 할텐데 하고 생각합니다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애비에게 문자메시지도 가끔 보내고 한다는데 몇번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오히려 내가 보낸 회수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문자 메시지를 받는 순간 대부분의 아버지는 어린 아이처럼 가슴 설레고

뿌듯한 행복감에 젖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래도 딸은 귀엽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 딸아이는 자기가 쓰는 방 정리 때문에 저와도 아내와도 다투는 일이 있습니다.
정리 좀 하라고 하면 친구들도 모두 이렇게 사는 데 유달리 우리 집만 다구치냐는 겁니다.
좀 정리하고 지내면 큰 일 나는 건지 나원참...

저는 시간이 있으면 가끔 아내와 동네 찜질방에 가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허리가 아픈 아내를 배려하는 생각으로 갔는데 이제는 제가 더 자주 가자고 하는 편입니다.
우선 같이 앉아서 얘기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일주일동안 쌓인 피로와

긴장을 툭 털어 버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 아내가 너무 좋아해서도 같이 가는 일이 잘하는 짓이란 생각이 듭니다.
찜질방에서는 다른 건 안먹지만 구운 계란을 2알과 식혜를 먹습니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구운 계란이 제법 독특한 향과 맛을 가지고 있어서

먹는 재미가 이 또한 별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맛속에서도 사는 재미를 느낍니다.

제가 살아 가는 데 있어 아내는 든든한 동반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가끔은 그 위치와 중요성을 잊어 버릴 때도 있습니다만...
저는 가까운 광교산이나 청계산을 오를 때마다 두 부부가(나이가 들었든 젊었든)

나란히 산에 오르거나 마주앉아 도시락을 까 먹으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부럽게 바라봅니다.
인생의 동반자로서 이제 더 가까워 질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질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산에도 가고 가까운 곳 여행도 가고 찜징방에도 같이 가는 거지요.

출근길이면 아내는 늘 엘리베이터까지 배웅을 나옵니다.
그리고 잘 다녀오라고 합니다.
요즘은 일찍 오라는 얘기는 안합니다. 왜냐하면 새벽 일찍 들어 오기 때문입니다.
가끔 술먹고 새벽에 들어 오는 날 아침이면 아내는 현관문을 쾅 닫고 들어 가 버립니다.
야속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너는 아내 입장이면 더 할 거다!"
제 친한 친구의 얘기입니다.

4년동안 박사학위과정을 밟느라 사실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있었습니다.
남 들은 저보다 훨씬 큰 고생이 있었을 걸로 생각합니다만, '주경야독'의 길은 힘들다고만

표현하기에는 모자라지요.
또한 지도교수님의 각별한 배려가 있었기에 남들보다 수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주경야독의 '주'라는 게 '晝'도 있지만 '酒'도 있거든요.
사회가 도통 술 안먹고 일하게 놔 두질 않습니다.
사실 조금씩 먹는 다는 게 그리 쉽나요.
기분 내키면 몸을 내 팽개치게 되고 그 다음 날은 아픈 머리, 쓰린 속에,

텅빈 지갑을 보면 후회막급이지만 멈추어 지지 않는 게 우리네 술 문화입니다.
어쨋든 금년에는 횟수와 양을 팍 줄여 볼랍니다.
술, 그 속에서 삶의 맛을 느껴 볼랍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미루어 왔던 몇가지를 해보려고 합니다.
본격적인 영어공부, 강단에 서서 후학을 가르치는 일, 유럽배낭여행,

백두대간 일부라도 등산하는 일, 중국 황산 오르기, 칸첸중가 트레킹,

베트남 북부 오지마을 체험, 태백산에서 며칠 묵기...등등
그 중에서 올해는 딱 2가지만 골라서 해 볼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꼭 도움이 되는 술자리만 가지고자 합니다.
저를 아는 분들의 협조와 배려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설사 제가 먼저 청하더라도 꼭 한번 언질을 주시기 바랍니다.


  ---> 더끈이의 오늘의 생각 : 특별하지 않은 삶이지만, 무언가 뜻있는
                                            일들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대로'가 아니라
                                           '이보다 더'하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