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에서 자연으로 살다보면 자연이 되는 가 봅니다. 박새며 솔새, 딱새를 손바닥이나 어깨 위로 불러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생화에 빠져 살던 그가 이제 새와 친구가 되어 새처럼 가볍게 전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월간 마을 2005년 10월호에 소개되었던 황대석씨 댁을 찾았을 때 그는 새들과 친구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야생화를 기르며 사는 황대석씨에 대한 이야기는 2005년 10월호에 실려있습니다.)
꽃샘추위의 끝에서 맞는 봄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달콤했습니다. 나뭇가지들은 봄볕에서 푸른빛이 배어나고 있었습니다. 지금쯤 산촌에서는 꽃이 피겠다는 생각에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산촌은 아직 황량한 봄이었습니다. 양지바른 밭에서는 푸릇푸릇 풀들이 더러 머리를 내밀고 있었지만 주변은 여전히 헐벗은 겨울 모습이었습니다. 산촌의 봄은 늘 그렇게 더딥니다.
봄을 찾아 떠난 길에 들른 곳이 황대석씨 댁입니다. 영월의 산동네에 통나무집을 짓고 야생화를 기르며 사는 황대석씨 댁에 가면 이른 야생화라도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습니다. 주인은 출타 중인지 아무도 없는 집 정원의 연못가에는 버들개지 몇 개가 피어 있었습니다. 돌담장에 기대어서는, 봄을 맞는다는 꽃 영춘화가 눈물만한 꽃 봉우리를 터트렸습니다.
복수초는 이미 잎사귀까지 푸르렀고 보라색 동강할미꽃 한 무더기 소담스러웠습니다. 그곳에서 이른 봄을 찾고 있는데 박새와 딱새들이 어깨에도 오르고 손에도 날아듭니다. 솔새도 앞에서 길을 막습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새들이 수없이 몰려들어 함께 꽃을 보고 같이 봄을 찾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겁 없는 녀석들이란 생각으로 신기해하고 있는데 출타했던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거실로 들어가 땅콩 한 움큼을 들고 나옵니다.
“모이를 주지 않으면 저 녀석 성화에 배겨날 수 없어요.” 새 모이를 주다가 어느새 새들과 친해지게 되었다는 사연을 소개합니다. 그래서 새들은 사람만 오면 겁 없이 모이 달라며 달려든다는 거였습니다.
땅콩을 손바닥에 놓자 새들이 손바닥에 앉아 땅콩을 쪼아 먹기도 하고 한 알씩 물고 날아가기도 합니다. 더러 겁 많은 놈들은 주변을 빙빙 돌다 제 동료들의 그런 모습을 몇 번 지켜보다 용기를 내 손바닥으로 내려옵니다.
전원생활을 시작하고 난 후 10여년을 야생화에 뻐져 살던 황대석씨가 요즘은 그렇게 새들과 친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집 주변에 있는 박새와 딱새들에게 모이를 주자 이 녀석들은 아예 황대석씨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어깨에도 날아오르고 손도 쪼아댑니다. 거실로 들어오면 문밖에서 조잘대며 주인을 불러내기도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나면 자연은 스스로 닮게 되는가 봅니다. 스스로 야생화가 되고 박새가 되고 딱새도 됩니다. 그래야 자연과 친구가 된다는 말이 진정 어울립니다. 그것이 전원생활을 하는 참맛이라며 웃는 황대석씨의 표정은 자연 그대로입니다.
황대석씨는 자연에서 살며 스스로 자연이 되고 나니 마음은 때론 야생화처럼 아름답기도 하고 새처럼 가볍다고 말합니다.
(월간 마을 2007년 4월호에 사진과 함께 내용이 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