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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7년차 그녀, 벚꽃보다 아름답다

부경(扶熲) 김기선 2007. 4. 11. 08:36

포장마차 7년차 그녀, 벚꽃보다 아름답다


(한겨레) 박어진의 여성살이

 

어스름 해질 무렵, 노점에서 느타리버섯과 쪽파를 사들고 나니 건너편 길 벚나무가 포장마차 지붕 위로

 연분홍 꽃 조명을 퍼붓는다.

4월 첫 주 연례행사, 벚꽃 잎 샤워가 시작될 조짐이다. 오징어 튀김, 어묵 두 꼬치에 떡볶이 한 접시를

 곁들여 아예 자리에 앉는다.

 

남편이 죽은 뒤 쉰 살 넘어 가장으로 취임한 아주머니. 7년 전 운전면허 2종을 따고 포장마차를 개업했다.

트럭을 운전하지 않으면 친정 엄마와 두 아들까지 네 식구 먹고 살 길이 없었다 한다.

아침 8시 반에 일어나 새벽 2시에 잠자리에 든다. 밤 12시 넘어까지 포장마차 불을 밝히는 건 학원 갔다

집에 오는 학생들과 야근한 직장인들이 어묵 국물 한 컵의 따뜻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동네 ‘초딩’부터 군것질 좋아하는 젊은 아기 엄마들까지 단골이 많다. 천원에 3개, 왕 오징어 튀김은 크고

 맛있기로 다리 건너 송파에까지 소문이 나 며칠 전엔 4만원어치를 한 보험회사 사무실 파티에 납품했다고

자랑이다. 손이 커서 내게도 어묵 한 꼬치를 자주 덤으로 주신다.

 

뽀글이 파마 머리에 잘 웃고 털털한 성격 덕분인지 손님들은 곧잘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고 한다.

순대 한 접시를 썰어놓고 앉은 20대 백수 청년은 사는 게 죽을 맛이라고 한숨, 30대 독신녀는 일자리를 잃은 후 맞선조차 안 들어온다고 하소연이다.

 

매사에 고집 센 남편이 정년퇴직을 해 집에 같이 있는 게 스트레스라는 또래 ‘아짐씨’의 신세타령까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그다. 열심히 들어주고 냅다 한마디 한단다.

 

“나도 사는데 왜 못 살아? 그냥 살아.” 남과 비교하니 욕심이 생기고 욕심이 많아지면 아픈 데가 많아진다고 명쾌한 분석이다.

 

그의 최대 현안은 구청에서 펴고 있는 포장마차 제거 작전. 이미 포장마차와 다른 노점상들이 있는 길가 도로에 나무를 심겠다는 최후통첩을 받았단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그날이 두렵지만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솥에서 포장마차 7년차답게 날렵한 솜씨로 김밥말이 튀김과 야채튀김을 만들어 낸다. 큰아들은 착한 아가씨와 결혼해 손녀를 두었다. 작은아들 취직할 때까지, 그리고 예순 살까지는 일하고 싶다는 그. 추석과 설을 빼곤 달력의 빨간 날에도 오전 11시면 포장마차 문을 연다. 많지는 않아도 저축은 조금씩 늘고 있다. 비록 쫓기는 무허가 영업이지만 지금 이만큼 건강하니 다른 불만이 없다. 고된 한 해의 노동에 대한 훈장처럼 아주머니 머리 위에 벚꽃이 핀다. 일하는 그녀가 4월 벚꽃만큼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