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선점하라
해외 선진 기업들은 꿈과 비전, 즉 미래를 선점함으로써 산업 내 주도권을 확보하고,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선도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규칙과 미래는 이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미래 예측은 단순히 이미 형성된 미래 트렌드를 읽어내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 최정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미래 선점과 전략 능력의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이다. 선진 기업들의 미래 선점 전략과 국내 기업에의 시사점을 살펴보자.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왔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변변한 산업 기반이 없었지만, 이제는 가전, IT, 반도체, 조선, 철강, 자동차 등의 산업에서 한국 기업들이 세계 상위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선진국의 유명 기업과는 차이가 많다. 2005년 Fortune 500대 기업 리스트를 살펴보면 한국 기업은 11개사에 불과하다. 일본의 81개사, 미국의 176개사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고,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네덜란드와 스위스도 각각 14개사와 11개사의 500대 기업을 가지고 있다.
질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더 벌어진다. 대한상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10대 기업의 매출액은 2000년~2005년 37.0%가 늘어났으나 세계 10대 기업 매출은 52.1% 증가했다. 500대 기업에 포함된 11개 국내 기업들의 합계 자산총액(4,610억 달러)은 미국 기업들의 2.5%, 일본 기업들의 5.6%에 불과했다.
결론적으로 아직까지 세계적 수준의 기업이 적으며, 그나마 500대 기업 대열에 들어간 기업들도 세계 정상급의 기업에 비해 성장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 미래를 선점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국내 기업과 선진 기업이 차이가 나는 것일까?
기업간의 차이를 기술과 경영 두 가지 면에서 살펴 보았을 때 현재 기술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부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격차가 있겠지만, 특히 제조 기술에 있어 우리 기업들의 수준은 최정상급에 도달해 있다. 경영기법만을 두고 보면 우리 기업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섰다고 볼 수 있다.
선진 기업 경영과의 궁극적인 차이는 의외로 추상적인 개념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바로 ‘꿈과 비전(Vision)’이다. 선진 기업들은 해당 산업계와 고객에게 꿈과 비전을 보여주면서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다.
꿈과 비전이라는 개념은 다소 막연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꿈과 비전을 통한 경영은 미래 선점과 연결되며, 미래 선점은 실질적인 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래 선점은 기업의 성공을 보장하는 열쇠 역할을 한다. 미래를 선점하는 기업만이 높은 수익성과 시장 주도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이야기되는 선도자 효과는 미래 선점의 다른 이름이다. 미래를 선점하는 기업은 자신의 의지대로 시장을 움직임으로써 경쟁자들의 추격을 물리칠 수 있다.
반면 후발주자는 선도자가 짜 놓은 규칙과 구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 시장의 규칙과 구도는 선도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열심히 뛰어 봐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후발주자는 영원히 ‘원조’가 될 수 없다. 경쟁 전략으로서의 마케팅은 인식의 싸움이다. 고객의 마음에 ‘첫번째’로 자리잡지 못한 제품은 선도 제품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후발주자는 선도자에 비해 높은 성과를 달성하기가 어렵다.
이런 사실의 가장 좋은 예는 패션 산업에서 찾을 수 있다. 패션의 유행은 소비자 조사 같은 방법을 통해 정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소수의 업계 대표가 모여 “다음 패션 트렌드는 이렇게 하자”는 식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들은 세계 유명 패션쇼에서 한 계절 빨리 자신들이 정한 스타일이나 컬러를 발표함으로써 유행을 기정사실화한다. 즉, ‘그들’이 말하는 대로 미래가 이뤄지는 것이다.
선진 기업의 미래 선점 전략
따라서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선진 기업들은 미래를 선점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그들의 미래 선점은 크게 산업 비전의 제시와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의 선도라는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 산업 비전의 제시
경영 저술가인 Manfred Kets de Vries는 “CEO는 희망을 가져다 주는 상인”이라고 말했다. 선진 기업들은 우선 CEO의 비전 마케팅을 통해 산업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들의 미래상을 다른 기업들이 따라오도록 유도한다. 세계 유수 기업의 CEO들은 업계의 주요 행사에서 자사의 비전을 설파한다. 세계 IT 산업을 선도하는 Intel은 CEO가 다양한 컨퍼런스에서 PC 및 반도체 산업의 미래상과 Intel의 역할을 전파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MS의 빌 게이츠가 대형 스크린 앞에서 산업의 미래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도 무척 친숙한 모습이다.
또다른 비전 제시의 방법은 기술 표준화의 주도이다. 이것은 산업 표준에 자사의 기술을 적극 반영하고, 기술 로드맵을 제시해 부품사와 경쟁사를 자사의 의도대로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한다. 기술 표준의 주도자로 인식되지 못하는 기업은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90년대 후반 DVD 플레이어가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시절에, 할리우드의 영화 타이틀 제작업자들은 일본과 유럽의 유명 제품에 대해서만 호환성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 호환성 테스트에서 배제되었던 국내 기업이 만든 DVD 플레이어는 간혹 정품 타이틀을 제대로 재생하지 못했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억울한 ‘의혹’을 산 것은 물론이다.
● 고객 라이프 스타일(꿈)의 선도
미래를 선점하는 또다른 방법은 고객 라이프 스타일의 선도이다. 이것은 고객에게 미래의 생활 방식을 제안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에 필요한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때 고객은 단순히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동참하게 된다. 따라서 라이프 스타일 선도는 고객 충성도 및 기업 이미지 제고, 부가가치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HP는 2000년대 초반부터 ‘Cool Town’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Cool Town’은 유비쿼터스 시대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HP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온오프라인 전시 공간이다. 이 프로젝트는 유비쿼터스 기술이 일상 생활과 업무 환경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보여준다. 소비자들은 인터넷이나 세계 각처에 있는 ‘Cool Town’ 전시관을 통해 미래 생활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HP는 또한 자사의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자사 PC로 편집하고, 자사 프린터로 출력하는 ‘Digital Imaging’ 라이프 스타일을 내놓기도 했다.
애플 iPod는 제품 차원에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해 ‘블루 오션’을 개척한 대표적 케이스다. iPod는 온라인 음악 판매 사이트인 iTunes 뮤직스토어와 하드드라이브형 MP3 플레이어를 결합해 돌풍을 일으켰다. iPod와 iTunes는 또한 지난해 ‘Podcasting (iPod + Broadcasting: 인터넷에서 방송 등 최신 음성파일을 자동 다운로드 받아 iPod 등의 휴대용 MP3 플레이어에 전송해 감상하는 것)’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기업의 현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는 최정상급이라 할지라도, 미래 선점 측면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산업의 비전을 제시하는 CEO도 많지 않고, 독자적인 기술 로드맵으로 산업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도 많지 않다. 아직까지 산업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상품과 서비스도 거의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대부분 대규모 투자, 대량 생산을 통한 시장 주도권 확보나, 기존 기술의 개량 및 응용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이 선진 기업들만큼 체계적으로 미래 전략을 내놓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기업 문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단기 성과에 집착해 무조건적으로 허리띠만 졸라매다 보면 미래를 준비하고, 새로운 성장 엔진을 발굴할 재정적·정신적 여유는 생기지 않는다.
이런 경향은 IMF 경제 위기 이후 성과주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그 결과 CEO 및 임원의 재임 기간이 짧아져 장기적인 전략 수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서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국내 CEO의 평균 재임기간은 4.2년이었다. (<LG 주간경제> 795호, ‘CEO의 재임 기간과 경영성과’ 참조) 이는 성과주의 경영의 ‘원조’인 미국(8.9년)이나 유럽(6.5년)에 비해 상당히 짧은 것이다. 아울러 아직까지 CEO의 기능이 전략보다는 운영에 치우쳐 있는 분위기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전략 스텝 기능이 현재 시장에서의 경쟁 전략 위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외국 기업같이 미래 예측이나 장기 전략을 전담하는 상설 부서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진 기업들의 장기적·시스템적 접근
선진 기업들은 미래 전략에 대해 훨씬 장기적이고 시스템적인 접근을 한다.
우선 조직 문화 자체를 미래지향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선진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경영진에 대해 재무적 단기 성과와 함께 이미 수립된 비전과 중장기 경영전략에 대한 전략 지표 평가를 병행하고 있다. 물론 우리 기업들도 전략 지표 평가를 많이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실적 평가에 비해 중요도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상설 조직을 두고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유수 기업 중 상설 미래예측 부서가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GE, Shell, IBM, Siemens, British Telecom 같은 기업들이 하나같이 미래 예측 부서를 상설로 두고 있다.
Shell의 미래연구 부서는 특히 구소련 붕괴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 Shell은 이 시나리오를 근거로 구소련의 석유 이권을 선점해 막대한 이익을 보았다. 놀라운 것은 그때가 냉전이 한창이었던 1980년대 중반이었다는 점이다.
세계 1위의 기업인 GE는 이미 1968년에 독자적인 미래 연구기관을 만들었다. British Telecom은 200여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기획단(Futurology Unit)을 운영 중이며, Siemens는 2004년부터 2020년 유럽의 정치, 경제, 생활, 기술, 환경 상황을 전망하는 ‘Horizon 2020’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독일의 미래 전략 컨설팅사 Z-Punkt가 조사한 결과는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조사에 의하면 독일 주요 기업 60개사 중 적극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있는 기업이 절반에 가까운 26개사였으며, 전체 기업의 30%는 별도의 상설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 30%는 모두 독일이 자랑하는 글로벌 기업들이었다.
미래를 선점하지 못했을 때의 문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기업들이 미래 선점에 나서지 않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가장 확실한 것은 영원히 후발 주자로 남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 선진 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시장 규칙 아래에서 낮은 수익성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희망 사항’에 그치게 될지도 모른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미래를 선점하지 못할 경우 중국 기업들에게 추월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기술과 경영 측면 모두에서 격차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은 먼저 기술 측면에서 한국 기업과의 격차를 계속 좁히고 있다. 올해 초 산업자원부는 “디스플레이를 제외한 통신장비, 2차전지, 가전 등 분야에서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1~3년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가격, 품질을 함께 고려하는 산업경쟁력의 경우 중국 기업이 한국을 추월하는 시기는 더욱 빠를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자원부, 중국 산업 및 기술경쟁력 분석과 대응 방안)
경영 측면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과는 다른 성장 전략을 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우리 기업은 선진국 기업을 모방해 제품을 만들고, 기술을 계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전략을 써 왔다. 중국 기업들은 사업을 초기부터 키워나가는 대신 선진국 기업을 인수합병해 기술과 브랜드를 얻는 방법을 쓰고 있다. 다시 말해 중간 단계를 뛰어넘어 국내 기업과 대등한 위상을 가진 중국 기업이 조만간 다수 등장할 것이다.
미래는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물론 국내 기업들도 나름대로 미래 예측과 장기 전략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미래 예측은 아직까지 단순히 미래 트렌드를 읽어내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반면 선진 기업들은 미래의 흐름을 읽어냄과 동시에 능동적으로 미래의 모습을 만들어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미래는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점은 지난 40년 동안 세계 미래학계를 이끌어 온 하와이대학 마노아 학파의 미래관에서 잘 드러난다. 마노아 학파는 단일한 미래(The Future)는 존재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달라지는 복수의 미래 대안(Alternative Futures)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미래 연구의 목표는 연구 주체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것(Preferred Future)으로 미래의 모습을 몰고 가는 데 있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선진 기업들이 미래를 연구하는 목적이다(<그림> 참조).
선진 기업들은 또한 이미 발생한 트렌드를 따라가기 보다는 새로운 이슈(Emerging Issue)가 트렌드로 자라나기 전에 포착해 능동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집중한다. 트렌드란 발생한 이슈가 이미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는 큰 흐름으로 자리잡은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도 이제는 단순히 미래 트렌드를 읽는 것에서 탈피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수준으로 한단계 도약해야 한다. 미래 트렌드를 단순히 읽어내는 것은 수동적으로 변화에 끌려가는 것이며,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미래상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오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은 지금 성장과 정체의 변곡점에 서 있다. 단순히 원가를 절감하고, 물건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한차원 더 높은 성장의 단계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남보다 앞서 미래를 예측하고, 우리에게 유리한 미래상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에 대해 고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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