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레빈의 <깨진 유리창 법칙> 서평 기업속의 좀비와 뱀파이어를 반추하면서...

범죄심리학에 "깨진 유리창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건물이 있는데, 유리창 하나가 깨져 있다고 하자. 그런데 건물주가 그것을 수리하지 않고 있다면 그 결과는? 다분히 보수적인 이념지형을 가진 이 이론의 발상에 의하면 동네의 개구장이들, 불량배들, 범죄인들은 이 건물을 계속 공격하게 되고 건물은 유리창만이 아니라 문짝이며 페인트칠이며 엉망이 된다고 한다. 이것이 "깨진 유리창 법칙"이다.
이 범죄심리학의 이론을 비즈니스에 옮겨 놓은 것이 <깨진 유리창 법칙>이다.
어느 회사 홈페이지의 고객센터가 링크가 잘 안된다고 하자, 혹은 매장의 페인트칠이 다 떨어나간다고 하자. 이런 사소한 일들은 회사의 평판을 갉아먹고 결국은 회사의 부도에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깨진 유리창 법칙>의 내용이다.
그런데, <깨진 유리창 법칙>에서는 주로 포인트를 고객과의 접점에다 맞추고 있다. 불친절한 매장직원이라던가 홈페이지의 오류, 고객센터의 불친절 등등.
난 이 "깨진 유리창 법칙"을 조직차원에서 생각해 보았다. 노동패러다임을 지지하는 사람은 사측의 비인간적인 조치에 분개하고 직장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문제는 조직에 기생하면서 조직의 기강과 분위기를 와해시키는 와해형 인간형들 있다는 것이다.
회사에 왔다갔다 출퇴근하면서 하는 것도 없이 월급만 받아먹는 좀비형 인간들, 회사의 복지규정들과 제도들(가령, 평생고용, 연공서열제 등)에 기생하면서 조직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형 인간들.
최근의 이랜드 사태를 보면 돈 백이나 받으려고 몇 년씩 회사에 충성하다가 한 방에 해고되는 사회부조리현상이 벌어지기도 하며 이런 기사를 접하면 그런 사측의 이윤논리에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런데 조직엔 뱀파이어도 있고, 좀비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벌, 인맥으로 입사해서는 고액의 연봉 받으며 조직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인간들 말이다. 한국적 노동환경에서는 사실 해고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수많은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되기조차 한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조직의 "깨진 유리창"이 되지 않게 하려면 과감하게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분위기도 되야한다.
조직내에서 철밥그릇을 지키고 있는 뱀파이어들이 "깨진 유리창"이 되어서 조직을 말아 먹기 전에 해고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보수성향의 경영경제이론에서 주장되는 해고와 구조조정이 실제로 정당한 경우는 이 경우가 아닌가 한다. 조직의 효율성을 증대하고, 단순히 그 방편으로 인건비절감을 위한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이 자행되는 것과는 경우가 다르다.
사실, 이 책이 별로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파격적인 컨셉에 비해서 서술도 단순하고 내용도 계속 반복되며 적절하지 못한 예들을 들고 있다. 또한, 기업과 사회를 둘러싼 현상에 대한 관찰이 너무 피상적이어서 소비자의 불평푸념처럼 들린다. 비즈니스와 컨설팅을 오래한 저자의 학력과 경력이 무색하게 보이며, 기업과 조직에 대해서는 나만치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든다.
하지만 "깨진 유리창"이라는 컨셉은 시사하는 바가 있고, 좀 더 확장하여 사고해 볼 여지가 있다. 단지 고객과의 접점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기업문제의 일반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사회정치문제로 지평을 넓힐 수도 있을 것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은 책을 읽으면서 뭔가 거창한 것을 얻기보다는, 컨셉을 이해했다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데에 의의가 있는 책으로 보인다.
<출처 : 한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