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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고수 3인 한국형 마케팅을 논하다

부경(扶熲) 김기선 2008. 9. 5. 23:17

마케팅 고수 3인 한국형 마케팅을 논하다
 


●“한국은 얼리어답터 천국… 먼저 뛰어들 펭귄을 찾아라”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설문에 따르면 경영자의 96%가 현재 한국경제를 위기상황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중에 절반 이상은 IMF 때보다 더 나쁘다고 답했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소비자 개인에서부터 기업에 이르기까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대통령이 직접 내년 연말이면 경기가 좋아질 거라 했으니 일단 기다려보는 게 상책일까. 하지만 여기 소비침체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선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짜야한다고 주장하는 마케팅 고수 3인이 있다. 그들은 한국의 시장 상황, 한국 소비자의 소비성향에 맞는 한국형 마케팅 전략을 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담참가자◇

조서환 아태마케팅포럼 회장·KTF 부사장

한상린 아태마케팅포럼 자문 교수(한양대 경영학과)

원효성 국민은행 부행장(신용카드사업그룹)


■조서환 KTF 부사장-네슬레는 동서식품의 인스턴트 커피에 참패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급한 성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한국 소비자들은 히트상품이라면 한쪽으로 몰려가는 심리가 크다. 이것을 펭귄효과라 부르는데, 마케터들은 누가 가장 먼저 뛰어들 펭귄인지를 찾아야 한다.■

■원효성 국민은행 부행장-한국 소비자들은 상대적 질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불하는 금액과 상관없이 절대적인 수준의 질을 기대한다. 값도 싸고 질도 좋은 것을 찾는다. 기대수준이 그만큼 높은 소비자들인 것이다.■

 

 

▶Q 소비침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고민이 클 것 같은데요, 각자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어느 정도 인가요.

원효성 부행장(이하 원)
: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겉에서만 보면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소비침체로 인한 현상들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신용카드의 전체 이용액이 크게 줄지는 않았지만 소액결제의 비율은 늘어났다.

한상린 교수(이하 한) : 불황에는 오히려 신용카드 이용이 는다는 말이 있다. 소액을 결제하더라도 연말에 조금이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신용카드로 결제하려는 심리 때문이다. 실제로 유통되는 현금은 현저히 준 것 같다.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을 찾는 경영자 수도 급감했다. 일선에서 떠날 여유가 없어진 모양이다.

조서환 부사장(이하 조) : 전체적인 소비시장을 봤을 때 활황과 불황을 구분하는 바로미터로 보통 골프웨어를 든다. 골프웨어 소비가 줄었다면 전체 소비가 침체됐다고 보는데, 지금이 그렇다.

소비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측면도 눈여겨볼 만하다. 통계 수치들을 보면 최근 백화점의 매출은 오히려 늘었는데, 매출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바로 고액결제가 가능한 우량고객들이다.

▶Q 한국형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것이 이러한 불황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이번 대담의 취지인데요.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한국 소비자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소비자들의 특성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생활용품이건 IT제품이건 오래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게 나오면 바로 바꾼다. 얼리어답터가 가장 많이 포진한 나라가 아닐까 싶다. 이로 인해 소비 패턴이 굉장히 패셔너블하다. 마케터들은 이러한 한국 소비자들의 급한 성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성격이 급하다 보니 히트상품의 의미가 더 크게 나타난다. 한국 소비자들은 잘 팔리는 상품이 나왔다하면 너도나도 몰려가는 심리가 크다. 마케팅 용어 중에 ‘펭귄효과’라는 말이 있다. 펭귄 한 마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면 다른 펭귄들도 따라서 같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만든 말인데, 한국은 펭귄효과가 유독 심하다. 싸이월드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금융상품은 소비재보다는 기본적으로 무거운 상품이지만 비슷한 성향이 있다. 금융상품의 경우 잘못 사면 패가망신할 수도 있지만, 재무상황을 안 보고 일명 ‘묻지마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수입에 맞지 않는 부채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남이 하는 것만 보고 따라 하기도 한다. 교체주기도 짧다. 자주 해지하고 자주 재가입한다. 대출도 길게 안 쓴다. 다른 나라의 모기지론은 보통 30년 기준이지만 국내는 7~8년 정도다. 처음부터 감성적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 같다.

3G 시장이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 아무도 몰랐다. 우리 예측보다 50%는 일찍 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하는 것을 대체로 쑥스러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나가는 서비스를 위해 영상통화가 가능한 휴대폰을 구매하는 것이다. 이러한 얼리어답터 층이 매우 두텁다.

지금 나온 얘기들은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바로 펭귄효과를 활용하는 것이다. 마케터들은 누가 제일 먼저 물속에 빠질 펭귄인지를 찾을 필요가 있다.

▶Q 유니레버나 P&G, 네슬레 등의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시장에서 실패한 결정적 요인도 한국 소비자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십니까.

다국적기업에서 근무했고 외국에서 마케팅 배운 사람이 국내에서는 유독 힘을 못 쓰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소비자 행동을 너무 논리적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그렇게 논리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모순 덩어리다. 네슬레가 왜 한국에서만 이기지 못했나. 앞서 말한 한국 소비자의 급한 성미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네슬레는 동서식품의 인스턴트 커피에 참패했다.

월마트의 사례도 유명하다. 세계 최대의 할인점이 유독 한국시장에서 힘 못 쓰는 이유가 궁금해 직접 찾아가 본 적이 있다. 가보니 월마트는 미국식 창고형 매장으로 서비스가 없고, 조명이 침침했다. 가격이 아무리 싸봤자 한국 소비자들의 정서에는 맞지 않겠다 싶었다.

한국 소비자들은 할인점이라도 친절한 서비스를 원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맥도날드가 시장을 장악하지 못한 몇 안 되는 국가 중에 한 곳인데 그 이유는 롯데리아가 한국 소비자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시장을 따로 관리할 만큼 중요하게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한국을 전략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과의 비교는 그래서 굉장히 어렵다. 효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큰 기업이라면 동일한 룰에 의해서 리스크 관리를 해주는 게 낫지 않겠는가.

▶Q 정리해 보면 서양의 소비자들이 주로 합리적 소리를 하는 반면 동양의 소비자들, 특히 한국의 소비자들은 감성적 소비를 주로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특징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인가요.

미국 소비자들은 합리적 의사 결정 전통에 익숙해 있다. 내가 100원을 내면 그만큼의 질을 기대한다. 돈이 없으면 싼 걸 사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만큼 질이 낮을 거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한국의 소비자들은 그러한 상대적 질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불하는 금액과 상관없이 절대적인 수준의 질을 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값도 싸고 질도 좋은 것을 찾는다. 한국은 소득 수준에 비해 기술과 서비스가 매우 발달한 사회다. 상품 외에 부가 서비스를 이렇게 많이 주는 나라가 없다. 기대수준이 그만큼 높은 소비자들인 것이다.

다른 측면에선 과시욕이라 부를 수 있는 허황된 소비심리가 큰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또, 값비싼 디오르 화장품이 단일 매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게 한국이다.

미국 TV 프로그램 중에 리치앤페이머스라는 프로가 있었다. 부자와 유명인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미국인들은 그 프로그램을 보고 ‘저렇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반감부터 갖는다. 자신의 소득 수준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Q 사실 소비침체에 관해서는 중소기업이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물건은 잘 만들었는데 팔리지가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마케팅 역량 부족의 문제로 볼 수 있을까요.

사실은 마케팅하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타겟 소비자가 굉장히 뚜렷하고, 특정 분야로 일이 집중돼 있다.

그래서 포지셔닝도 하기 쉽다. 문제는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에 정말 필요한 사람은 마케팅 전문가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마케팅할 관심과 열정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보통 ‘우리 입장에서 그런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에 자문할 일이 있어 가보면 마케팅 잘하는 기업일수록 마케팅 교육을 더 많이 한다. 경영자의 의지 문제도 큰 것 같다.

한경희생활과학의 예를 보면 중소기업의 성공에서 마케팅 전문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한경희생활과학은 마케팅 전문가를 데려와 그들의 영역에서 자리를 확고히 잡아가고 있다.

중소기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소규모 마케팅 컨설팅 그룹이 많이 생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의 경우 마케터를 내부에서 키울 수 있는 시간이 없으므로 이러한 컨설팅 그룹을 잘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프로젝트비만 받아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예 계약할 때 롱텀계약을 하는 문화가 빨리 정착돼야 한다.

▶Q 경영현장에서는 이성보다 감성의 영역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마케팅 현장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는 부분이 있는지요.

> 감성적인 측면은 마케팅에서도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마케팅은 인식에 관한 것이다. 제품과의 싸움이 아니라 어떻게 고객의 인식을 자극하느냐의 싸움인 것이다. 이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세기에 엘리베이터를 처음 만든 회사가 오티스다. 그때만 해도 너무 느려서 사람들이 짜증을 냈다. 그때 오티스에서 거울을 붙이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 보느라 느리다는 생각을 안 하고 불평이 없어졌다. 제품의 질을 향상시킨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인식을 변화시킨 것이다.

21세기에 와서 상품의 품질은 동질화됐다. 이게 대전제다. 품질이 더 좋다고 광고해봤자 변별력이 없다.

면도기 광고를 하면서 ‘잘 깎인다’고 해도 이제는 안 먹힌다. 질레트 광고를 보라. 질레트 면도기로 면도를 하고 나서 여자 친구와 키스할 때 피부가 매끄럽다는 말만 한다. 기술적인 면을 직접적으로 부각하지 않는 것이다.

텍스트보다는 이미지, 그 이미지에 살을 붙이는 이야기 쪽으로 마케팅의 흐름도 변하고 있다. 그래서 강조하는 게 디자인마케팅, 스토리텔링마케팅인데 이미 모든 기업이 다 수렴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또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감성마케팅의 효시는 아이러브스쿨 사이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사람 특유의 옛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인터넷이란 하이테크에 연결시켜 성공한 대표적 마케팅 사례다. 하지만 아이러브스쿨은 변화하는 시장과 고객의 트렌드를 읽지 못해 롱런하지 못했다. 블로그나 1인 미디어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를 읽지 못한 것이다.

▶Q 최근 베이징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올림픽과 관련해 특수를 누린 기업들이 많았습니다. 올림픽과 같은 단기 전략을 짜는 것과 장기 전략을 짜는 것은 다른 형태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올림픽이야 말로 장기 전략을 짜야 한다. 올림픽에는 세계적 기업들이 다 몰리기 때문에 제약이 많다. 이벤트는 단기지만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장기 전략에 의해 움직인다.

스포츠마케팅을 할 때 주의할 게 있다. 슈퍼스타를 후원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엄청난 마케팅 효과로 돌아올 거라고 분석하지만 그것은 넌센스다. 그들이 후원한 스타는 이미 국민의 스타이기 때문에 링크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광고담당자는 그것을 수치로 계량화시키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계산되지는 않는다. 월드컵 때 붉은악마를 광고에 쓴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미 국민들 모두가 알고 있는 붉은악마이기 때문에 PR효과가 크지 않았다. 그러한 단기 전략이 아닌 장기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Q 현재는 각자 자리에서 최고의 마케터가 되셨지만 실패의 경험도 분명 있으실 텐데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마케팅 실패 사례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너무 앞서 나가서, 타이밍이 안 맞아서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페브리즈보다 3년 앞서서 악취제거제를 만들었는데 당시에는 니즈가 없었다. 이미 페브리즈가 시장을 선점하고 나니 후발주자로 끼어들 틈도 생기지 않았다.

상당히 굳어져 있는 인식을 특별한 가치변화 없이 마케팅만으로 깨기는 힘들다. 예전에 ‘커리’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상품이 있었는데 실패했다. 사람들에겐 여전히 ‘카레’가 익숙한데 그것을 마케팅만으로 변화시키려 했으니 통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 고착화된 이미지를 바꾸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90년대 미국에서 크리스탈 펩시를 내놨다. 하얀색 콜라였다. 맛도 괜찮았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콜라가 짙은 갈색이라는 고착화된 이미지를 깨지는 못했다.

실제 내 경험도 있다. 당시 다니던 은행에서 파격적인 디자인을 위해 은행 고유의 자기앞수표를 만들었다. 조폐공사까지 가서 논의해 만들었는데 거의 안 팔렸다. 마케터 혼자만의 생각으로 시장의 큰 부분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Q 마지막으로 최고의 마케터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요소나 자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죠.

마케팅에는 세 개의 축이 있다. 시장, 경쟁, 고객이 그것이다. 마케팅은 경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것은 상대적이다. 내가 잘해도 경쟁사가 더 잘하면 소용이 없다. 이론적으로는 절대적인 고객만족이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경쟁적 우위가 중요하다. 그래서 시장, 고객, 경쟁의 변화를 잘 따라가야 한다. 최근 이슈가 되는 말로 마켓센싱이란 말이 있다. 시장에 대해 감을 잡는 것을 말한다. 마케팅 잘하는 기업의 차이는 마켓센싱의 차이다. 감을 잘 잡고 시장과 고객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예리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나는 3C를 강조한다.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Change), 창의적인 사람(Creativity), 그리고 도전할 수 있는 사람(Challenge). 이 세 요소를 갖춘 마케터들이 성공한다.

마케터들에게 최근 더 필요해진 능력은 바로 통섭의 능력이다. 자기가 속한 시장만 보면 시야가 좁아진다. 경험의 모든 접점에서 사물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여러 분야에서 가져온 것들을 다시 통합해서 전혀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그런 능력이 향후 성공한 마케터의 핵심 자질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재훈 기자 (huny@ermedia.net)